◎미 한국학권위자 팰레이박영신 교수 「한국사회와 유교적 전통」 주제 대담/근대화과정 유교 전통가치관 못살려/이기적 파벌주의 민주주의 정착 장애◇팰레이교수
▲하버드대 졸▲예일대 석사▲하버드대 박사▲워싱턴대교수·한국학연구소장
◇박영신교수
▲연세대 교육학과졸▲버클리대 사회학 박사▲연세대 사회학과교수·국학연구원장
미국의 저명한 한국학 연구자인 워싱턴대 한국학연구소장 제임스 B 팰레이(JAMES B PALAIS·60)교수가 국학연구의 활성화를 위해 연세대가 백락준박사의 아호를 따 제정한 제1회 용재상 수상자로 선정돼 최근 내한했다. 팰레이교수는 76년 조선시대 정치를 분석한 「전통한국의 정치와 정책」이라는 저서를 낸 바 있으며 권위있는 한국학 학술지 「한국연구지(JOURNAL OF KOREA STUDIES)」 창간자겸 편집자이다. 「한국사회와 유교적 전통」을 주제로 팰레이교수와 연세대 국학연구원장 박영신(사회학)교수가 대담을 나누었다.【편집자주】
▲박영신=한국은 올해 광복 50주년을 맞아 일제잔재 청산과 통일준비등 2000년대의 청사진 마련을 위해 다양한 노력을 하고 있습니다. 정부도 「세계화」라는 주제로 국가발전전략을 세우고 있는데 조선시대의 유교적 전통과 접목되거나 새롭게 해석해야 될 부분은 없습니까.
▲팰레이=세계화는 한 마디로 「국가경쟁력을 키우는 것」이라고 말할 수 있습니다. 한국의 재벌기업들은 특권을 누리면서 고속성장해온 것이 사실인데 기득권이 없어도 시장에서 자유로운 경쟁을 할 수 있는 능력을 키우는 것이 「기업의 세계화」라고 할 수 있습니다.
한국의 경우 19세기말 불어닥친 쇄국주의 바람으로 인해 근대화의 길을 제대로 걷지 못하고 결국 일본 제국주의의 침략을 받았던 과거를 돌이켜 볼 때 국가전략으로서 「세계화」는 언제나 중요합니다. 특히 냉전이후 급격한 지각변동을 일으키고 있는 국제 정세속에서 한국은 시야를 넓혀 다른 나라와의 교류를 통해 독자적 발전전략을 찾는 것이 필요합니다.
▲박=팰레이교수께선 19세기말 조선 정치사에 관심이 많은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다양한 반대세력의 저항에 직면해 대원군의 개혁정치가 좌절됐듯이 최근 문민정부가 추진중인 개혁정책도 일부 기득권세력의 저항으로 실패할 수도 있다는 우려가 나오고 있습니다.
▲팰레이=다양한 기득권세력의 저항은 비슷하지만 19세기말과 지금의 상황은 너무 달라 단순비교하기가 힘듭니다. 대원군의 견제세력은 농장과 대규모 토지를 소유한 양반계급이었는데 개혁방법이 유교사상과 전통에서 벗어났다는 것이 가장 중요한 반대이유였습니다. 반면 오늘날 김영삼대통령이 추진하는 개혁은 비정상적으로 비대해진 군부세력을 약화시키는 것과 부정부패에 찌든 관료사회의 물갈이 성격이 강한 것으로 개혁의 대상과 배경등이 전혀 다르다고 생각합니다.
▲박=조선시대이후 5백년간 한국 사회를 지배했던 유교적 전통이 오늘의 한국사회·경제 발전에 끼친 영향은 무엇이라고 생각하십니까.
▲팰레이=유교적 전통에도 여러 요소가 복합적으로 작용하고 있으므로 단정적인 결론을 내리기는 무척 어렵습니다. 유교사회는 보수주의와 도덕주의가 지배한 사회입니다. 사회적 가치관은 물론 사회조직·제도의 원리가 전체적으로 보수적이면서도 도덕주의적 성향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조선시대의 사대부는 행동의 전제조건으로 도덕적 가치를 제일 중요한 것으로 내세웠죠. 유교사회에서의 보수주의와 도덕주의는 현대 한국사회 구성에 일정한 영향을 미쳤습니다. 또 유교에도 분명 진보적 요소가 있었고 한국의 경제발전에 그런 요소들이 중요한 영향을 미쳤습니다. 그러나 전반적으로 한국의 근대화과정은 유교적 전통과 단절된채 진행된 측면이 강하고 따라서 유교가 경제발전에 큰 영향을 주지는 못했다고 생각합니다.
한국에서 흔히 「개발독재」로 표현되는 박정희전대통령의 군부통치는 관료사회와 지식인들을 효율적으로 조직해 경제발전을 이끌었는데 이 과정에서 국 가권력의 힘은 어느 나라보다 강력했습니다. 박대통령이 위계와 서열을 중시하는 군출신인 점도 요인이지만 조선시대의 강력한 전제왕권의 전통도 작용했다고 볼 수 있습니다.
▲박=민주주의와 유교적 전통은 어떤 연관이 있다고 보십니까.
▲팰레이=현대적 의미의 민주주의 발전이나 정착과정에 유교적 전통이 끼친 영향은 특별히 없는 것으로 보입니다. 오히려 유교적 전통으로 인한 가부장적 가족주의 때문에 민주주의가 생활 속에 정착하기까지 상당히 오랜 시일이 걸릴 것으로 보입니다. 민주주의 정착에는 교육을 통해 훈련을 받는 것도 필요하지만 무엇보다 인습과 가치관이 중요하기 때문입니다.
최근 한국에서 야당과 여당의 대립이 때때로 장외투쟁의 형태로 나타나 일부에서는 비민주주의적 행태라고 비판하는데 저는 오히려 민주주의로 가는 과정이라고 생각합니다. 권위주의정권이 오랜 시절 통치해온 한국의 경우 압도적인 힘을 가진 여당이 일방적으로 정치를 주도해오면서 이같은 혼란상이 빚어졌다고 볼 수 있죠. 의회의 다수를 차지한 여당은 무엇이든 다 할 수 있다는 전근대적 정치태도에서 벗어나 야당과 토론·협조를 하면서 민주주의 발전을 이뤄가야 합니다.
▲박=한국의 경우 경제 교역량이 날로 늘어가고 있는 반면 「사회적인 삶의 질」은 여전히 경제규모에 비해 만족스럽지 못한 형편입니다. 특히 이기적 가족주의나 파벌의식이 보편적 가치인 정의·평등의식을 압도하고 있습니다.
▲팰레이=아시아에는 전체적으로 유교적 전통으로 인해 큰아들이 재산을 상속받고 가족 구성원 전체의 생계를 책임지는 가부장적 가족제도 전통이 있었죠. 이같은 전통은 한국뿐만 아니라 중국, 일본등도 마찬가지입니다. 반드시 가부장적 가족주의가 사회적 가치관 정립에 걸림돌이 된다고 단정하기는 어렵지만 원인중의 하나라고는 지적할 수 있죠.
▲박=미국의 한국학연구현황은 어떻습니까.
▲팰레이=지난 10여년간 한국학이 큰 붐을 이루었고 매년 열기가 더해가고 있습니다. 최근 5년간 학부과정은 물론 석사과정에서도 한국학 전공자가 크게 증가했습니다. 하버드 컬럼비아 UCLA 하와이대등 주요 대학에 3∼10명씩 한국학을 연구하는 교수들이 있습니다. 최근 한국의 국제교류재단등을 통해 일부 재정지원을 받기도 하지만 아직 전체 동양학중에서는 연구자수가 적은데다 지원도 부족한 편이어서 어려움이 많습니다.<정리 박천호 기자>정리 박천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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