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당도 잘못이고 야당도 잘못이다,정부도 잘못이고 운동권도 잘못이다라는 식의 오랜 양비론에 염증을 느끼는 사람들은 좀 부족하더라도 어느 한쪽을 분명하게 지지해주자고 말한다. 그러나 선거법개정을 놓고 지금 여야가 싸우는 것을 보면서 어느쪽의 손을 들어줄 수 있단 말인가. 민자당은 이번 사태의 원인제공자라는 점에서 비난을 면할 수 없다. 그들은 여야가 6년동안의 협상을 거쳐 작년 3월에 만든 통합선거법을 지방선거를 불과 넉달앞둔 시점에서 개정하려 하고 있다. 민자당은 선거법 협상을 벌이던 시절에도 여당이었고, 법을 제정할 때도 여당이었다. 그들은 다수결의 횡포나 어떤 압력에 의해서 문제의 선거법을 만든 것이 아니다.
자신이 만든 법을 1년만에 고치겠다고 나설 때는 그동안 어떠한 상황변화로 법 개정의 필요성이 발생했는지 설명할 수 있어야 한다. 민자당은 기초자치단체선거의 정당공천배제를 주장하면서 정당이 후보를 낼 경우 지방자치가 중앙정치에 종속 오염되고, 지역주의가 기승을 부릴 것이라고 우려하고 있다. 그들은 또 야당이 「공천장사」를 하기 위해 선거법개정에 반대하는 것이라고 비난하기도 한다. 그 말이 진심이라면 1년전에는 왜 눈감았을까. 다수결이 민주주의의 원칙이라고 해서 여당이 다수의 힘으로 이랬다 저랬다하는 것을 정당화할 수는 없다.
민주당의 대응은 그 당에 과연 지도력이 있는지 의심하게 한다. 국회에서 선거법 개정안이 날치기로 통과되는 것을 막겠다는 명분으로 국회의장과 부의장을 집에 「억류」하고, 민자당 소속 국회 내무위원장과 간사를 속초와 여수로 「격리」시킨 것은 폭력이다. 웃는 얼굴로 억류하고 격리시켰다고 해서 폭력성이 사라지지는 않는다. 과거 독재정권아래 야당인사들은 그런 폭력을 수없이 당했는데,어떻게 그 치가 떨리는 폭력을 흉내낼 생각을 했는지 어이가 없다.
여야는 각기 여론조사 결과를 내세우면서 여론은 자기편이라고 주장하고 있으나, 기초자치단체 선거의 후보를 정당이 공천하는 것이 좋으냐 나쁘냐를 여론조사로 묻겠다는 발상자체가 무리다. 그 문제는 전문가들 사이에서도 의견이 맞서고 있고, 장단점이 팽팽하므로 일반국민들이 어느 한쪽을 선택하기는 어렵다. 신문에 난 여야의 주장과 그에 관한 토론을 샅샅이 읽었다는 사람들도 대부분 어느쪽을 지지해야 할지 확신이 서지 않는다고 말한다.
문민정부 출범으로 정치가 크게 달라질 것이라고 기대했던 사람들은 날이 갈수록 실망하고 있다. 여당은 과거의 여당을 너무나 닮았고, 야당은 타고난 만년야당처럼 굴고 있다. 여야는 각기 정치적 계산으로 서로를 흠집내기에 바쁘지만, 그것은 승자없는 진흙탕 싸움이다. 여야가 빨리 정신차려야 하는 이유는 승자없는 정치란 여야 모두에게 이롭지 않기 때문이다.<편집위원>편집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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