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축통화 없어 위기·기회 공존/“우리 금융개방 신중대처 필요” 세계금융시장이 「무정부상태」에 빠져들고 있다. 금융시장을 지배하는 돈의 가치가 너무 급격히 요동치고 있기 때문이다. 시시각각 탄력적으로 변하는게 돈의 가치이자 금융시장의 속성이기는 하지만 올해엔 정도가 유독 심하다. 멕시코 페소화위기, 베어링스도산이 그랬고 전혀 예기치 못했던 달러화붕락이 그렇다.공교롭게도 세계금융질서가 가장 혼란스러울 때 우리나라는 금융장벽을 헐고 있다. 개방은 불가피하지만 무한대의 위험에 얼마나 견딜지 우리의 금융현주소를 점검해야 할 때라는 지적이 강력히 대두되고 있다.한 외환전문가는 『예측하기 어렵지만 꼭 예측해야 하는게 금융시장인데 지금은 정말 예측불허다』라고 말했다.
올들어 연속된 금융시장혼란의 출발은 멕시코 페소화위기였다. 아직 선진국대열에 끼지도 못한 나라의 경제위기로 달러가치와 주가가 폭락했다. 뒤이어 영국 베어링스그룹이 파생금융거래에서 8억달러의 손실을 입었다. 발단은 딜러개인의 무모함이었지만 세계굴지의 은행이 파산하고 세계주식시장이 마비되는 끔찍한 결과를 낳았다.
사상 최저치행진을 이어가고 있는 달러화폭락(엔화폭등)사태는 외환딜러들의 코를 납작하게 만들었다. 외환전문가들은 미국경기가 살아나고 있는데다 일본경제도 이젠 더 이상의 평가절하를 감당하기엔 한계점에 도달했다고 판단, 금년중 1백5∼1백10엔대의 상대적 달러강세기조를 점쳤기 때문이다.
그러나 작년말 99·58엔으로 마감된 달러환율은 7일 92엔대까지 곤두박질쳐 두달여만에 무려 7%의 절하율을 기록하고 말았다. 이제 한 나라(멕시코), 한 개인(베어링스의 딜러)에 의해서도 국제금융시장은 흔들릴 수 있고 그안엔 극단적 이익기회와 극단적 손실위험이 공존하고 있음이 확인됐다.
외환전문가들은 이같은 무정부적 국제금융시장질서에 대해 「추락하는 달러가치」와 그로 인한 「기축통화의 진공상태」에서 그 이유를 찾고 있다. 지난 반세기동안 세계금융시장을 이끌어온 달러화는 이젠 유일한 기축통화의 위치를 완전상실했다. 이젠 어느 나라, 어느 투자가도 「달러=안전통화」란 생각을 갖고 있지 않다. 오히려 위기가 닥치면 보유달러조차 매각하고 대신 엔화나 마르크화를 사들이고 있다.
대지진에 따른 경제위기에도 엔화가치는 상승하는 반면 대호황을 맞은 미국경제는 오히려 달러폭락에 직면하고 있다. 지난 85년 달러당 2백50엔대에 있던 엔화환율이 현재 92엔으로 떨어지고 같은 기간에 마르크환율도 달러당 2·7마르크에서 1.4마르크로 하락했다. 엄밀히 보면 현재의 국제통화질서는 달러 엔 마르크가 함께 군림하는 「삼점(삼점·TRIPOLY)체제」이고 돌려 말하면 어느 통화도 절대적 지배력을 행사할 수 없는 무정부상황인 셈이다.
세계금융시장의 혼란이 정점에 달한 시점과 우리나라의 금융개방시점이 공교롭게도 일치하고 있다. 확실한 경쟁력을 갖추었다면 우리가 지금 무주공산의 세계금융시장에 뛰어드는게 좋은 기회가 되겠지만 허약한 체질이라면 멕시코처럼 냉혹한 국제금융전쟁에서 회복하기 힘든 상처만 입게 될 것이다.<이성철 기자>이성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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