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업이 다른 기업을 흡수·합병(M&A)하는 것은 자본주의 시장경제체제에서는 얼마든지 용인된다. 그러나 여기에는 대전제가 있다. 법이나 규정·규칙 또는 관행에 따라 정당하고 공정한 기준위에서 이뤄져야 한다. 기업의 흡수·합병 가운데서 당해기업간에 서로 합의하여 이뤄지거나 같은 계열기업간의 통폐합인 우호적인 흡수·합병은 기업의 이익에 관한한 큰 무리가 없다. 문제가 되는것은 한 기업이 다른 기업을 사실상 강제로 지배하는 적대적인 흡수·통합이다.
지금 물의가 일어나고 있는 동부그룹의 「한농인수」문제는 기업의 흡수·합병질서와 직접 관련돼 있는 것이므로 시비를 명석하게 가려 거기에 따라 단호하게 처리돼야 한다고 생각한다.
동부측의 「한농인수」에서 핵심쟁점이 되는 것은 동부가 장기신용은행과 서울신탁은행의 특정금전신탁을 통해 한농주식을 18%나 매입하면서 증권감독원에 사전승인절차와 보고의무를 밟지않은 것이 적법한지의 여부다.
동부측에서는 『합법이다』고 주장하고 있는데 반해 경영권을 뺏긴 신준식 전한농사장측에서는 『거대자본을 앞세운 재벌의 비윤리적 기업사냥』이라고 비난했다. 신씨측은 증권감독원에 유권해석을 요구했고 서울민사지법에 신임임원에 대한 직무정지 및 주총무효 가처분신청을 냈다. 가처분신청이 받아들여지면 본안소송을 제기하겠다는 것이다.
우리는 법원의 심의과정에 의도적으로 영향을 주려는 생각은 없다. 그러나 우리나라는 기업의 상장을 촉진하고 또한 상장기업을 적대기업으로부터 보호하기 위해 원칙적으로 적대적인 기업의 인수·합병을 엄격히 제한하고 있다는 것을 지적하고 싶다.
증권거래법 200조는 주주외의 사람이 상장법인발행주식을 10%이상 소유하지 못하게 못박고 있다. 또한 주식을 5%이상 소유하는 경우 소유한지 5일이내에 증권감독위원회와 증권거래소에 보고하게 돼있다. 또한 1%이상 변동된 경우에도 같은 의무가 있다.
동부측은 「특정금전신탁」의 경우 이 규정의 적용을 받지 않는다는 것을 들어 위법이 아님을 주장한다. 특정금전신탁은 글자 그대로 신탁한 돈의 용도를 지정하는 것이나 취지는 자활능력없는 자녀에 대한 유산의 용도지정같은 것이지 남의 기업의 매수·합병용으로 의도된 것은 아니다. 이 규정이 기발하게 악용됐다 하겠다. 이 규정은 증권거래법의 취지에 맞추어 더 이상 악용되지 않도록 개정돼야 하겠다.
동부측은 또한 증권거래소의 한농주식매입여부에 대한 문의에 대해 두번이나 거짓답변을 했다. 거래소는 이에대해 하룻동안 거래중지의 징벌을 내렸다. 한국기업계에 준법과 공정한 게임정신이 하루빨리 정착돼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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