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샘 페킨파(영화탄생 100년기획/박흥진의 명감독 열전: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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샘 페킨파(영화탄생 100년기획/박흥진의 명감독 열전:23)

입력
1995.03.06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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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물어가는 서부시대 쓸쓸히 노래/「와일드 번치」 유혈낭자한 라스트신 압권 「와일드 번치」(THE WILD BUNCH·69년·워너브라더스 작)는 자유욕구의 표현수단으로 폭력에 매달렸던 샘 페킨파(SAM PECKINPAH·1925∼1984년)감독의 「사라져가는 단순하고 거친 것」에 대한 비가(비가)이며 피로 쓴 폭력의 시라고 말할 수 있다.

 이 영화는 자동차와 기관총 같은 산업화의 물결이 서부를 역사의 뒤안길로 밀어넣던 20세기초를 배경으로 늙어가는 무법자들의 마지막 한탕을 선혈이 낭자하게 그리고 있다.

 그가 6대의 카메라를 각기 다른 속도로 동시에 틀어놓고 찍은 주인공들과 멕시코 군대간의 마지막 대살륙전은 묵시록적 종말을 연상케 하면서 할리우드 역사에 남는 기념비적 장면이다.

 피와 죽음, 폭력이 카메라의 교차되는 느린 동작과 빠른 동작에 의해 탄력성있게 묘사돼 마치 육감적인 유혈의 발레를 보는 듯한 느낌마저 든다.

 69년 일반시사회 때 이 라스트신에 충격을 받은 사람들이 토하고 비명을 지르는가 하면 관객과 비평가들로부터 극단적인 찬양과 비난을 받았다.

 파이크(윌러엄 홀덴)가 이끄는 와일드 번치(「무법자 무리」를 의미)는 텍사스 한 마을의 철도회사금고를 털다 기습을 당해 멕시코로 도망친다(페킨파는 자유와 죽음의 수용처로 멕시코를 좋아했다).

 이들은 여기서 도둑떼나 다름없는 멕시코 군대의 우두머리 마파치장군의 제의에 따라 무기 수송용 미군 화물열차를 탈취한다. 와일드 번치를 뒤쫓는 것은 한 때 파이크와 한 패였던 손턴(로버트 라이안)이 이끄는 현상금을 노리는 사냥꾼들.

 야성적이었던 페킨파는 부정직한 세상의 명예에 대한 개념에 늘 깊은 관심을 보여왔다. 와일드 번치도 비록 도둑이요 살인자들이긴 하지만 그들 나름대로의 명예와 신의를 중요시하는 무법자들이다.

 페킨파는 이들을 통해 한 때 서부를 지배하다 서서히 죽어가는 명예의 규범을 장렬하고도 쓸쓸히 찬양하고 있다. 낭만파의 송가답게 운명적이요 비감한 분위기가 가득하다.

 자신의 인생과 세상 돌아가는 꼴에 환멸을 느낀 파이크일당은 모두 감정적으로 찢기운 사람들(페킨파의 자화상이다). 소태 맛본 사람들처럼 쓴 표정을 짓고 거친 말을 내뱉는 무법자들은 결국 자살행위나 다름없는 마파치군대와의 처절한 살육전을 통해 자기 구원을 시도하고 있다. 자신들을 희생해 마감되어가는 서부신화의 한 장에 끼어드는 것이다.

 미 영화계의 위대한 장인 페킨파는 카우보이 자손으로 폭력적인 성격의 술꾼이요 싸움꾼이었다. 그는 『폭력을 미화한다』는 비난을 받기도 했지만 페킨파에게 폭력은 「보다 나은 세계의 추구를 위한 표현」이었다.

 50년대 TV웨스턴으로 작품활동을 시작한 페킨파는 서부인답게 「고원을 달려라」 「던디소령」 「케이블 호그의 발라드」 「주니어 보너」 「패트 개레트와 빌리 더 키드」등 서부영화를 잘 만들었다.

 주인공들은 문명세계에 당황하는 폭력적인 남자들. 페킨파는 이들의 심리와 정신적 고통을 파고 들었다. 그에게 여자는 하찮은 것에 지나지 않았다. 70년대 초까지 「지푸라기 개들」 「겟 어웨이」등 문제성과 오락성 있는 영화들을 만들었으나 70년대 중반부터 문제에 대한 관심을 상실하면서 쇠퇴기에 접어든다.

 타협을 모르는 성격이어서 영화사들과의 싸움이 잦았는데 그의 많은 영화가 자기 뜻과 달리 난도질당해 상영된 것도 이 때문이다. 「와일드 번치」도 개봉 당시 워너브라더스사에 의해 일방적으로 칼질을 당한 뒤 상영돼 페킨파로부터 욕을 먹었다. 잘라져 나갔던 10여분이 복원된 「디렉터스 커트」가 현재 뉴욕과 LA에서 상영중이기도 하다.<미주본사편집국장대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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