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치가 국민을 걱정하는게 아니라 국민이 정치를 걱정하는 세상』이란 얘기는 어제 오늘에 나온 얘기가 아니다. 사회의 구석 구석이 모두 발전하고 있는데 유독 정치만이 제자리걸음을 하고 있지는 않느냐 하는 안타까움 때문일 것이다. 완승 아니면 완패의 정치. 「너도 살고 나도 살자」는 타협은 곧장 사쿠라로 등식화하는 정치판. 이런 상황 아래서 제대로 된 민주주의나 상대를 포용, 융합하는 큰 정치를 기대하는 것은 애당초 무리일는지 모른다.
○예견·조정력 결핍
최근 지방행정구조 개편문제를 놓고 벌이는 여야의 공방을 보면 「왜소한」우리 정치의 현주소가 극명하게 드러난다. 선거를 불과 4개월 앞두고 민감한 사안을 불쑥 꺼낸 집권세력의 예견력부족이나 조정력결핍은 물론 먼저 비판받아 마땅하다. 이런 중차대한 문제를 시간적여유를 두고 공론화하는데 실패한 정치권, 특히 여권의 직무유기는 그 어떤 변명으로도 용납될 수 없기 때문이다.
그러나 대통령까지 나서 『예정된 6월선거는 꼭 실시하겠다』고 밝혔음에도 불구하고 『여당측의 불순한 의도에 말려든다』며 논의마저 거부하는 야당측의 태도는 더욱 해괴하다. 행여 여당측이 자신들을 불러낸후 「전가의 보도」인 다수결로 밀어붙이지나 않을까 하는 두려움 때문이라고는 하지만 열려진 국회에서 대화마저 거부하는 것은 책임있는 야당의 자세가 아닌것 같다. 예컨대 기초선거에 중앙정치가 개입함으로써 야기될 수 있는 부정적 요인을 여야 모두 모르는바는 아니다. 다만 당리당략 때문에 눈을 감았을 뿐이다. 최근 일부지방의원들이 1년치 회의비를 챙겼다가 물의를 빚은 일이 있었다. 만약 이들이 순수한 주민자치로 「걸러진」사람들이었다면 그같은 몰염치한 짓을 할 수 있었겠느냐는 의문이 남는다.
○만남자체도 단절
정치의 왜소화 요인은 지자제문제만은 아니다. 이유야 어찌됐든 여야영수의 대화채널이 닫힌지 꽤 오래된것 같다. 야당대표의 비례가 문제돼서인지, 아니면 굳이 야당대표를 만날 필요가 없는 청와대의 입장 때문인지는 모르나 「만남」이 단절돼 있다. 그럼에도 어찌된 일인지 지난달 야당총무는 대통령과 조찬기회를 가졌다. 『미국은 대통령이 수시로 야당총무와 현안논의를 하고 있지 않느냐』는 설명도 따랐다. 그러나 영수회담에 빗장이 걸려있는 상황에서, 더구나 비주류소속의 총무를 대통령이 만난것은 아무리 「미국식」을 끌어대도 별로 설득력이 없는 것 같다.
YS식정치는 큰 정치였다. 평생의 좌우명이 대도무문아닌가. 비록 늦은 감은 있으나 김 대통령이 「세일즈외교」를 끝내고 돌아 오면 이기택 민주당총재와 만나 국정현안을 논의하는 것은 지극히 당연하고 자연스런 일이다.
○정치도 세계화를
지금 우리는 세계화를 목표로 하고 있다. 세계화 가운데는 정치의 선진화도 빼놓을 수 없는 과제일 것이다. 『처리되지 않을줄 뻔히 알면서 의원직사퇴서를 내는 유치한 정치쇼는 이제 그만두어야 한다』―의원직사퇴를 철회한 야당총재를 겨냥한 여당대변인의 논평이었다. 야당대변인의 험구 또한 결코 뒤지지 않는다. 원색적이다 못해 살벌하기까지 하다. 자신의 아내 힐러리에게 「×년」이란 욕지거리를 한 하원의장 모자를 백악관으로 초청, 멋진 화해극을 연출한 클린턴의 여유를 본받을 수는 없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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