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살리나스 후보사퇴 택일불가피/미,누구를 밀까 고민/전통적 견제의식 유럽계 기피/한국은 개도국·폐쇄성 부담감/시간벌기위해 서덜랜드 임기연장 가능성도 미국이 세계무역기구(WTO) 사무총장후보 지지문제를 놓고 고민에 빠져있다. 후보결정의 실질적 캐스팅보트를 쥐고 있는 미국은 그동안 카를로스 살리나스 전멕시코대통령에 대한 지지의사를 일관되게 표명해 왔다. 그러나 살리나스가 1일(미국시간) 후보사퇴 의사를 공식화하면서 이탈리아의 루지에로 전무역장관과 한국의 김철수 통상대사중 어느 한명을 택일해야 하는 새로운 부담을 안게 됐다.
유럽세를 등에 업은 루지에로와 아시아세의 김대사중 누구를 선택하느냐의 문제는 고도의 정치·외교적 판단을 요하는 미묘한 사안이기 때문이다. 미국은 최근 살리나스의 가능성이 희박해지면서 제4의 후보를 내세우는 궁여지책까지 고려했었으나 후보가 2명으로 압축되면서 공염불이 됐다.
클린턴행정부 사람들은 그동안 『살리나스가 사퇴한다 해도 미국이 루지에로를 지지하진 않을 것』이라고 말해 왔다. 그렇다고『한국의 김후보를 지지하겠다』는 말 역시 한 적이 없다.
살리나스 사퇴이후 클린턴행정부내의 반응은 백중세로 엇갈리고 있다. 우선 지한파들은 김대사를 밀어야 한다는게 대체적인 입장이다. 이들은 그동안 관세무역일반협정(가트) 사무총장을 유럽출신들이 독점해온데 대해 상당한 반감을 갖고 있다. 따라서 WTO만큼은 비유럽출신 총장체제로 출범시켜야 한다는 생각이다.
하지만 『한국출신은 아직 시기상조』라는 식의 회의적 반응도 만만치 않다. 이들은 시장개방에 폐쇄적인 한국이 과거 우루과이라운드(UR)협상 당시 협상타결에 끝까지 장애가 됐다는 점을 꼬집어가며 한국지지에 고개를 흔들고 있다.
다만 미국은 전통적으로 유럽에 대한 라이벌의식과 견제가 강한 만큼 일단 루지에로에 대한 지지의사를 쉽게 표명하진 않을 것으로 보인다. 미키 캔터 미무역대표부(USTR)대표가 그동안 루지에로를 그다지 선호하지 않는 태도를 취해 온 것도 비슷한 맥락으로 볼 수 있다. 캔터대표는 최근 유럽연합(EU) 통상담당 집행위원인 리언 브리턴경과 루지에로 지지문제를 놓고 한차례 회담을 가졌지만 완강한 입장을 고수했던 것으로 전해지고 있다.
하지만 미국의 반유럽 분위기를 곧바로 한국지지로 연결시키는데는 무리가 있다. 미국이 비유럽출신 총장을 원하고 있는 것은 사실이지만 WTO총장을 선진국과 개도국 둘중에서 선택해야 하는 상황에서는 개도국의 손을 들어주기가 현실적으로 쉽지 않기 때문이다.
물론 미국도 동맹국인 한국후보를 밀 경우 미국의 입장이 충실히 대변될 수 있을 것이란 점을 의심하진 않을 것이다. 그러나 미국으로서는 유럽권의 눈치도 보지 않을 수 없는 입장이다. 한국의 김후보를 밀 경우 유럽의 반대를 설득하기 위한 추가적인 타협이 뒤따를 수밖에 없음을 내심 부담스러워 하는 것이다.
따라서 미국은 신중한 선택을 위해 충분한 시간이 필요한 실정이다. 때문에 경우에 따라서는 오는 15일까지로 예정돼 있는 피터 서덜랜드 가트사무총장의 임기를 원래 임기인 6월30일까지로 연장해 합의도출의 시간을 더 확보할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 미국은 살리나스의 돌연한 사퇴로 인해 아시아와 유럽중 양자택일을 해야하는 곤혹스런 처지에 서 있다.<워싱턴=정진석 특파원>워싱턴=정진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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