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시빈민 격정적 삶 통해/순수한 변혁의 열망그려/시인·소설가·영화감독 다방면 명성/반파시즘 일관되게 형상화 제2차 세계대전 이후 이탈리아 문화 전반에 걸쳐 가장 독창적으로 활약했던 피에르 파올로 파졸리니(1922∼1975)가 1959년에 발표한 장편소설 「폭력적인 삶」이 번역돼 나왔다. 세계사가 불어판을 번역한 이 소설은 시인·소설가, 시나리오작가, 비평가, 그리고 영화감독으로 이름난 파졸리니의 반파시스트정신을 보여 준다. 그가 내놓은 모든 장르의 작품중 완전한 형태로는 처음 대중적으로 국내에 소개되는 것이다.
시로 작품활동을 시작, 「그람시의 유해」 등 9편의 시집과 수편의 장·단편소설, 시나리오, 에세이, 평론을 통해 일관되게 파시즘에 반대한 파졸리니의 국제적 명성은 주로 영화를 통해 얻어졌다. 「1900년」 「마지막 황제」를 만든 베르나르도 베르톨루치를 조감독으로 데리고 제작한 「걸인」을 시작으로 영화사상 가장 참혹하고 염세적인 영화 중 하나로 평가받는 「살로, 소돔의 120일」까지 13편의 영화를 만들면서 파졸리니는 정치적·성적 억압에 대한 반대를 일관되게 형상화했다.
그는 시의 언어에서 소설의 언어로, 글로 쓰는 시에서 영상으로 쓰는 시로 옮겨간 드문 작가중 하나이다.
한 대담에서 파졸리니는 『시나 소설은 언어라는 은유로 세계에 접근한다. 그러나 영화는 삶을 재창조함으로써 매개물없이 삶을 소유하고 살아가게 만든다』고 변신의 이유를 설명하고 있다. 동성애혐의로 공산당에서 추방된 경험도 있는 그는 1975년 많은 의혹을 남긴 채 로마의 빈민가에서 17세의 동성애자에게 난자당해 숨졌다.
그의 소설 「폭력적인 삶」은 토마조라는 한 도시빈민의 성장과 정신의 변화, 죽음을 통해 자본가·노동자계급이 상실한 공동체의식과 서사적 삶의 흔적을 그려내고 있다.
더러운 강물이 흐르고 거리는 진흙으로 뒤덮이고, 오물과 쓰레기가 널린 로마 변두리의 빈민촌 피에트랄라타가에서 토마조는 짐승과 다를 바 없이 웃고 떠들고 소리치고 먹고 마시고 배설하며 살아가는 사람들중 하나였다. 힘과 권위에 매혹당해 파시스트들의 소요에 참가하고 2년동안 옥살이를 겪지만 안정된 삶과 신분상승을 꿈꾸며 기독교신자가 된다. 그 즈음 결핵에 걸려 병원에 수용되고, 그 곳에서 간호사들의 파업과 환자들의 봉기를 지켜보면서 자신의 계급에 눈뜬 토마조는 공산당원들이 궁색하고 비열한 사람들인 줄 알면서도 퇴원과 동시에 공산당에 가입한다. 새로운 삶을 결심했을 때 도시에 홍수가 나고 사람들을 혼자 외롭게 구출해낸 토마조는 병이 깊어져 끝내 숨을 거두고 만다.
파졸리니는 이 작품에서 제도 속에 편입되지 않은 주변인들의 삶과 순수한 변혁정신을 잘 그려내고 있다. 혁명조차 권력이 되고 만다고 믿었던 그가 남달리 애착을 가졌던 제3계급의 점진적인 좌향이동과정을 비천하지만 격렬한 한 청년의 삶을 통해 드러내고 있다.<김범수 기자>김범수>
□파졸리니 연보
1922년 이탈리아 볼로냐 출생
1942년 첫시집 「카사르사의 노래」
1949년 동성애혐의로 공산당에서 추방
1955년 소설 「삶의 아이들」
1956년 시나리오 「카비리아의 밤」
1957년 장시집 「그람시의 유해」
1958년 시나리오 「젊은 한 쌍」
1959년 소설 「폭력적인 삶」 시나리오 「야만의 밤」
1961년 영화 「걸인」
1962년 영화 「마마 로마」
1963년 영화 「백색 치즈」
1965년 영화 「마태복음」
1966년 영화 「매와 참새」
1967년 영화 「외디푸스 왕」
1968년 영화 「법칙」
1969년 영화 「돼지우리」
1970년 영화 「메데아」
1971년 영화 「데카메론」
1972년 영화 「캔터베리 이야기」
1974년 영화 「천일야화」
1975년 영화 「살로, 소돔의 120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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