읽는 재미의 발견

새로워진 한국일보로그인/회원가입

  • 관심과 취향에 맞게 내맘대로 메인 뉴스 설정
  • 구독한 콘텐츠는 마이페이지에서 한번에 모아보기
  • 속보, 단독은 물론 관심기사와 활동내역까지 알림
자세히보기
러 정정 태풍의눈 알렉산드르 레베드 장군(뉴스메이커)
알림
알림
  • 알림이 없습니다

러 정정 태풍의눈 알렉산드르 레베드 장군(뉴스메이커)

입력
1995.02.26 00:00
0 0

◎“옐친은 떠나라”/“체첸서 우리소년병 총알받이 신세” 반기/군부내 폭넓은 지지… 차기대권 넘볼지도 젊고 저돌적인 장군 한 사람이 불안정한 러시아 정국에 「태풍의 눈」으로 떠올랐다. 파장의 장본인은 몰도바 공화국에 주둔하고 있는 제14군 사령관인 알렉산드르 레베드(45)중장. 크렘린궁의 리더십을 성토해오던 그는 최근 옐친러시아대통령을 향해 『사임해야 한다』고 공개적으로 비난하고 나섰다.

 레베드장군이 옐친퇴진을 요구하게 된 도화선은 체첸사태였다. 그는 『옐친이 그라초프국방장관의 말만 듣고 군부내 진정한 목소리를 외면했으며 훈련받지 않은 소년병들을 총알받이로 만들었다』고 당돌하게 반기를 든 것이다. 그러나 이 발언파문에도 레베드는 여전히 사령관의 자리를 지키고 있는 현실이 러시아의 오늘을 웅변으로 말해주고 있다.

 지금은 반옐친의 선봉장이 되었지만 레베드는 「오늘의 옐친대통령」이 있기까지 결정적인 역할을 해왔던 일등공신이다. 또 레베드는 그 반대급부로 군내에서 요직을 차지해왔다.

 지난 91년 8월 구소련 보수파 쿠데타 당시 모스크바 근교 툴라공수사단장이었던 레베드는  민주주의 수호를 외치며 러시아 의회를 사수하던 옐친을 지지하면서 쿠데타군에 맞서 의회건물을 경비하는데 몸을 던졌다. 그래서 옐친의 신임을 얻고 일약 군부의 실세로 떠올랐다. 공수부대사령관을 거쳐 92년 몰도바 평화유지군인 제14군사령관에 취임했다.

 지난 50년 노보체르카스크에서 출생한 레베드는 69년 리아잔공수군사학교에 입교하면서 군복을 입게 되었다. 그라초프국방장관은 그의 출세가도에서 떼어놓을수 없는 은인이었다. 대대장으로 아프간전쟁에 참전했을 때 그라초프는  그의 사단장이었다. 레베드는 군경력을 거의 공수부대에서 쌓았다. 그라초프와 그로모프전국방차관등과 함께 군부내에서는 「공수부대 3총사」로 통한다. 그는 90년 아제르바이잔의 바쿠에서 소요사태가 났을 때 진압부대로 출동하는등 어려운 일을 가리지 않고 해결해온 전형적인 무골이다.

 각진 얼굴과 시커먼 눈썹, 아마추어 권투선수로 다듬어진 그의 체격과 인상은 서방언론으로부터 「대리석 같다」는 평을 받고 있다. 성격도 저돌적이며 직선적이다.

 그의 통솔력은 뛰어나 장병들의 존경과 충성을 한몸에 받고있다. 지난해 11월 전군 지휘관회의에서 현정부의 지도력 부재와 군부내 부패와 비리등을 질타해 주목을 끌었던 그는 최근 군장병에 대한 여론조사결과 70%의 지지를 얻는 등 인기가 날로 상승하고 있다.

 그와 옐친의 갈등은 그라초프등 군수뇌부의 견제때문으로 알려지고 있다. 국방부나 총참모부로 영전이 되지 못한채 「변방」에 머무르다 96년 제14군이 몰도바에서 철수하면 예편당할 위기에 몰린 그는 『철군하면 내전이 발발할 것』이라고 경고하는 등 발언수위를 높여갔다. 그는 『러시아가 초강대국의 지위를 잃지 않고 현재의 혼란을 막으려면 칠레의 피노체트 같은 인물이 나와 권위주의 통치를 해야한다』고 주장했다.

 러시아 일부 언론들은 그가 96년 대통령선거에서 군부의 폭넓은 지지를 바탕으로 유력한 후보가 될수 있다고 전망하고 있다. 하지만 그는 군부밖에 조직기반을 갖고 있지 않다. 옐친의 등에 비수를 들이대며 「부루투스」로 변신해버린 레베드의 행보는 주목의 대상이다.<모스크바=이장훈 특파원>

기사 URL이 복사되었습니다.

세상을 보는 균형, 한국일보Copyright ⓒ Hankookilbo 신문 구독신청

LIVE ISSUE

기사 URL이 복사되었습니다.

댓글0

0 / 250
중복 선택 불가 안내

이미 공감 표현을 선택하신
기사입니다. 변경을 원하시면 취소
후 다시 선택해주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