덩샤오핑(등소평)은 죽지 않았다. 그러나 후등시대는 이미 시작됐다는 분석이다. 춘지에(춘절·설날)이후 점차 뚜렷해지는 후계자 장쩌민(강택민)의 예사롭지 않은 행보가 등이 사망해야 그의 시대가 실질적으로 끝난다는 기존 인식을 무너뜨리고 있다. 지난달 30일에 발표한 강의 새로운 통일방안은 등의 통일방안을 승계한다고 했으나 그보다는 차별성을 강조했다. 등의 둘째아들은 친구가 체포되는데도 방패막이가 되지 못함으로써 권위실추를 감수했다. 비슷한 시기 미국을 방문한 등의 셋째딸은 강의 정치적 장래를 적극적으로 옹호했다. 이는 장래를 대비한 정치적 몸사리기와 추파로 해석될 수있다.
언론의 자세 또한 만만치 않다. 춘지에인 지난달 31일자 인민일보의 1면은 강의 담화와 사진으로 온통 채워진 강의 페이지였다. 지도급 인물들을 소개하는 격주간 화보 중화영재지는 신년 첫호 표지인물로 강을 다루고 등은 다음호로 미뤘다. 등에 대한 예우가 지난해와는 확실히 다른 변화이다. 겉으로 드러난 것이기는 하지만 95년이 강의 시대 원년처럼 돼 간다는 사실을 점점 부인할 수 없는 형국이다.
등의 생전에 포스트 덩시대가 개막된 이유는 어디에 있는가. 최근 제기되고 있는 분석중의 하나는 외부의 중국흔들기가 후등시대를 앞당기게 했다는 것이다. 영국이 홍콩문제로 중국과 분쟁을 계속하고 미국이 중국의 무역관세일반협정(GATT)가입을 방해한 것은 최고실권자 등의 노쇠화에 따른 지도력의 공백을 노린 대표적 중국흔들기라는 지적이다.
따라서 중국지도부는 강이라는 새로운 중심이 실질적이며 강력한 권한을 행사하고 있음을 과시할 필요가 있다는 것이다. 등가족의 협조까지 받아가며 강의 후등시대 개막은 이루어졌지만 막후 역시 무대에서 연출된 장면과 일치할지는 좀 더 지켜보아야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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