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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신의 파수병」 30여년/최인호의 문학세계/김치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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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신의 파수병」 30여년/최인호의 문학세계/김치수

입력
1995.02.26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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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업화과정의 병폐 치열한 해부 우리의 역사에서 전업작가들이 양산되고 경제적인 여유를 갖게 된 것이 70년대부터라고 한다면 최인호는 그 주도자 가운데 한 사람으로 꼽힌다. 그는 60년대 후반 문단에 등장한 이후 수많은 장편소설을 발표하여 끊임없이 독자들의 호응을 받아온 작가이다. 그가 우리 문단의 주목을 받기 시작한 것은 우리 사회가 산업화되어 가는 과정과 무관하지 않다.

 그의 작품들 가운데 첫번째 계열이라 할 수 있는 「술꾼」 「모범동화」 「처세술개론」등은 동화적인 세계가 사라져버린 세계 속에서 살고 있는 어린이들을 그림으로써 육체적으로는 어리지만 정신적으로 늙어버린 끔찍한 삶의 양상을 제시하고 있다. 그것은 도덕적으로 타락하고 물질적인 가치를 위해 무슨 일이나 감행하는 산업사회에서 어른들의 삶의 음화로서 굉장한 알레고리에 속한다. 그가 형상화한 악동들은 가짜 가치가 지배하는 현실에서 어른들의 복제에 지나지 않는다. 어른들의 삶이 가지고 있는 위선이나 허위는 그 자체로 제시될 때에는 너무나 눈에 익은 것이어서 충격없이 받아들여지는 반면 어린이들의 삶에 투시될 때에는 커다란 충격을 가져온다. 이러한 그의 소설적인 장치는 전 작품에서 볼 수 있지만 이 단편소설들에서는 주된 관심의 대상이 되고 있다.

 두번째 계열의 작품은 그에게 청년문화의 기수라는 명성과 전업작가로서의 생계를 보장해 주는 돈을 가져다준 「별들의 고향」을 비롯한 일련의 장편소설들이다. 이들 작품을 통해 작가는 개인의 재능으로부터 여성의 육체에 이르기까지 모든 것이 상품화해 버리고 소비재로 전락하는 산업사회의 현실을 적나라하게 드러내면서 지켜야 할 가치들마저 무너져내리는 과정을 통해 사라져가는 모든 것에 대한 안타까운 애착과 지켜야 할 아름다운 것에 대한 대가없는 추구라는, 비극적이지만 절망적인 것만은 아닌 세계의 모습을 제시하고 있다.

 세번째 계열의 작품은 「견습환자」 「타인의 방」으로 대표되는 비극적인 개인의 발견을 다룬 작품들이다. 병원에 입원한 환자가 이름과 번호로서만 존재하고 인격을 갖춘 개인으로서 대접받지 못하는 현실에서 기호화해 버림으로써 존재론적 개인은 사라지고 기능적 개인만 남게 되는 결과를 제시한다거나, 대가족제도의 붕괴와 함께 찾아온 핵가족제도 속에서 개인이 스스로 왜소화하고 있는 자아를 발견하면서 스스로 모든 것으로부터 소외되어 사물화해 버림으로써 일체의 인간적 능력을 상실하는 현상을 파악하게 한다는 것은 오늘의 우리가 직면한 위기에 대한 통찰력있는 예언에 해당한다.

 네번째 계열의 작품은 「미개인」 「다시 만날 때까지」등으로 경제성장을 위한 개발정책이 경제적 이익만을 위해 모든 것을 희생시킬 수 있는 길을 열어놓음으로써 미친 듯 금전적 이익을 추구하는 광기와,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고 신분상승을 이루고자 하는 폭력에서 산업화의 냉혹한 그늘을 제시하고 있다.

 이러한 그의 작품세계는 그가 우리 사회의 변화의 현장에서 정신의 파수병으로서 치열하게 살아온 작가임을 입증하기에 충분하다. 그는 우리 사회가 중진국으로 발돋움하는 과정에서 잃고 얻는 것을 지나치게 따지다가 「깊고 푸른 밤」과 같은 절망도 체험한다. 그러나 그 절망은 그의 문학세계에 하나의 전기를 가져온다. 「길 없는 길」 「잃어버린 왕국」등과 같은 종교와 역사의 상상력에서 그가 찾고자 하는 긍정적 가치는 30년 가까운 문학적 체험이 가져다준 도량과 중량을 느끼게 하는 완성의 경지를 예측하게 한다. 청년문화의 기수였던 그가 어느덧 지혜의 세계에 들어선 것이다. 바로 그러한 이유 때문에 그가 새로 쓰고자 하는 「사랑의 기쁨」은 격정과 변덕과 실패로 가득찬 젊은날의 사랑이 아니라 그 모든 것을 포용하는 따뜻한 사랑의 이야기가 될 것으로 기대된다.<문학평론가·이화여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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