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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한 당·군세대교체 가속 전망/오진우 사망 계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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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한 당·군세대교체 가속 전망/오진우 사망 계기

입력
1995.02.26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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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정일 4월승계 관측 더무게/권력구조 다수분점 형태 띨듯 북한의 명실상부한 제2인자였던 오진우 인민무력부장이 25일 사망함으로써 북한의 양대권력기구인 당과 군 모두에서 인사및 조직개편이 가속화 할 것으로 보인다.

 그의 죽음은 김정일의 주석직 취임등 지연돼온 북한 최고권력의 승계절차가 오는 4월을 전후해서는 이뤄지게 될 것이라는 전망을 가능케 하고 있다.

 폐암 진단을 받은 오진우의 사망은 이미 수개월전부터 예고돼 왔다. 그러나 북한 권력전반에서 그가 차지해온 위치로 볼 때 앞으로 있을 개편은 단순한 「과시」의 수준을 넘어 김일성이 끌어온 통치조직이 김정일의 통치조직으로 넘어가게 되는 의미를 지니게 될 것으로 보인다. 이 과정에서 북한은 소수가 당과 군부, 그리고 행정에서의 요직을 겸해오던 권력집중형의 인사를 분화, 김정일을 정점으로 상호견제와 균형을 취하도록 할 가능성이 크다.

 우선 주목되는 것은 당정치국 상무위원회의 존치여부다. 이 회의체는 생전의 김일성·오진우와 김정일등 3명으로 구성됐던 북한의 실질적인 수뇌기구였다. 김정일만이 유일한 구성원으로 남은 당정치국 상무위원회는 ▲폐지 ▲실세 정치국원들을 승격, 구성원을 확대해 활성화하는 것 ▲혁명1세대들로 충원, 원로회의로 탈바꿈시키는 방안등 3갈래의 개편 가능성이 점쳐지고 있다. 이 기구의 향방은 어느 경우든 김정일체제의 성격을 가늠할 중요한 단서가 된다.  70년 5차당대회에서 폐지됐다가 80년 6차당대회에서 부활된 이 기구는 김정일 후계체제 구축을 주임무로 삼아왔다.

 오는 당뿐아니라 군에서도 인민군 원수이면서 인민무력부장, 군부사령관, 군총정치국장, 국방위원회 제1부위원장, 당군사위원등을 겸임, 권부의 정점에 있었다. 「정부내의 정부」로 정무원(행정부)이상의 위상을 갖고 있는 인민무력부의 부장직은 최광 총참모장(서열7위·차수·국방위원회부위원장)이 맡게될 것이라는 관측이 유력하다. 그러나 한때 좌천돼 노동자로 「혁명화교육」을 받은 경력이 있는 최는 인민무력부장으로서 오진우가 누렸던 위세는 갖지 못할 것으로 보인다. 김정일은 주석취임후에도 군최고사령관직을 계속 갖고 총참모부에 곧바로 명령을 하달하며 직접 군을 장악할 것으로 보인다.

 새 총참모장으로는 오극렬 당작전부장, 이하일 당군사부장 등 두 대장과 차수인 김광진 인민무력부 부부장이 꼽히고 있다. 오는 만경대학원출신의 혁명2세대로 79년 50세의 나이에 총참모장으로 발탁됐으나 오진우와 군현대화노선으로 이견을 보인끝에 해임된 김정일의 측근이다.

 이밖에 군의 통제기관인 군총정치국장은 현재 부국장인 이봉원·박재경대장 등이 승격될 것이라는 예상이다. 이같은 개편은 세대교체와 함께 김정일밑에서의 권력 분화라는 두가지 의미를 갖는다.

 혁명1세대는 이제 최광과 백학림 호위총국장, 이을설 사회안전부장, 박성철 부주석, 김철만 국방위원, 김익현 당군사위원 등이 남아있으나 연령으로 볼 때 오진우처럼 자연스럽게 퇴진하게 될 것같다. 북한의 권력체계로 볼 때 당정치국 상무위원과 인민무력부장의 임명은 당중앙위 전원회의와 최고인민회의 개최를 통해 김정일이 당총비서와 주석직에 선출된 뒤 이루어질 것으로 보인다.<유승우 기자>

◎오진우는 누구/김정일체제 후견역 제2인자/빨치산세대… 세습반대자 숙청 앞장/인민무력부장 19년… 말기 폐암입원

 오진우는 혁명1세대와 군부의 대표자로 김정일후계체제의 후견인을 자임해 온 북한권력의 제2인자다.

 지난33년 항일빨치산운동에 참가할 때 그는 16세의 소년사병에 불과했고 6·25에는 연대장으로 참전했지만 결국은 많은 선배빨치산을 누르고 최고계급인 조선인민군 원수에 올라섰다. 이 과정에서 그는 김정일세습에 반대하는 혁명1세대를 반당·반혁명분자로 몰아 숙청하는데 앞장서기도 했다.

 오는 1917년 3월3일 함남 북청에서 빈농의 아들로 태어났다. 빨치산에 참가한 뒤 소련 보병학교와 육군대학에 유학한 뒤 귀국, 46년 중앙보안간부학교 군사부교장으로 정규군 생활을 시작했다.

 그가 두각을 나타낸 것은 6·25전쟁을 겪으면서. 오는 전쟁중 소장으로 진급, 제43사단장, 서울근위 제3사단장을 맡았고 56년 당중앙위 후보위원으로 선출돼 권력핵심에 진입하기 시작했다. 이어 그는 58년 공군참모장, 63년 민족보위부 제1부상을 거쳐 대장으로 진급, 69년부터 인민군 총참모장을 지내며 70년 당정치국원이 됐다.

 그러나 그가 결정적으로 기반을 굳힌 것은 70년대 군부의 실세였던 이용무 군총정치국장을 비롯한 동료빨치산 출신을 제거하는 선봉역을 맡으면서부터. 김정일후계가 확정된 80년 6차당대회에서는 당정치국 상무위원에 올랐고 인민무력부장직은 76년부터 사망시까지 무려19년간이나 쥐고 있었다.

 지난해 10월 프랑스 파리시내 라에넥병원에 입원, 폐암으로 회복불능이라는 선고를 받았다. 김정일은 사망 하루전인 24일 오가 입원중인 병원을 찾아 마지막 문안을 했다고 북한 방송들은 보도했다.<유승우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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