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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재 학형 영전에/현승종 건국대 이사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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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재 학형 영전에/현승종 건국대 이사장

입력
1995.02.25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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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남재 김상협 학형! 학형께서 홀연히 이 세상을 떠나셨다니, 아니 이 웬말이십니까. 학형께서 운명하셨다는 연락을 받고 누구보다 먼저 혜화동 자택으로 달려갔지만, 말 없이 누워 계신 학형 앞에서도 실감이 나지 않은 채 다만 충격을 삭이지 못할 뿐이었습니다. 참으로 안타깝고도 원통한 일입니다. 이제 가시고 나면 두고두고 회한의 정만 더해 갈 줄 믿습니다만, 아직은 충격을 삭이지 못한채 다만 학형의 영전에 몇자 회한의 눈물을 뿌립니다. 모택동 사상을 연구하고 학생들 앞에 국제 정치학을 열강하시던 학자로서, 고려대 총장을 두차례나 역임하시며 이 땅의 대학교육 기반을 든든하게 다지신 교육자로서, 나아가서는 국가와 민족을 위해 노구를 이끌고 국무총리직을 수행하시던 정치가로서, 이후로는 적십자사 총재직을 맡으시어 박애정신과 남북통일을 위해 일하시던 사회봉사자로서, 학형께서 걸으신 길은 참으로 크십니다만, 이제 떠나가시는 마당에 무엇보다 큰 모습으로 떠오르는 학형의 온후하신 인품을 우리는 잊을 수 없습니다. 늘 말없으면서도 자상하시고, 사려깊으시던 학형은 우리가 오래 기억해야 할 인간의 모습이라 하겠습니다.

 학형과 나와의 좋은 인연은 그 옛날 고려대에서부터 시작되었습니다. 1946년 9월 1일, 우리는 고려대 교수로 함께 부임하였습니다. 학형께서는 그때부터 열렬한 강의와 자애깊은 사랑으로 학생들의 신뢰를 듬뿍 받았으며, 학문적으로도 각고 면려하여 훗날 「모택동 사상」이라는 명저를 남기셨습니다. 이후 50년동안 우리는 두사람만의 우정 뿐 아니라, 양가의 가족까지도 돈독한 우정을 맺어 동고동락하는 삶을 살았습니다. 내가 고려대를 떠나 성균관대 총장으로 부임할 때 학형께서 보여주신 남다른 우애도 또한 잊을 수 없습니다. 학형께서는 그때 고려대 총장직을 맡아 계셨고, 나는 떠나는 사람으로서 당연히 사표를 제출하였지만, 학형께서는 나의 사표를 수리하지 않은채 총장실 서랍속에 깊이 깊이 간직하여 두었다가 훗날을 기약하는 자상함을 보이셨습니다. 내가 성균관대를 떠나 다시 고려대로 복귀할 수 있었던 것도 또한 학형께서 보여주신 그 깊은 뜻에 힘입은 것입니다.

 이처럼 깊고도 넓으신 남재의 사랑이 비단 나에게만 해당되는 일이 아님을 나는 모를 리 없습니다. 학형의 손길, 눈길 닿는 곳이면 그 언제 어디서나 누구라도 잊지 못할 인간의 모습이었습니다. 학형의 품은 한없이 깊고도 넓었습니다. 이제 학형께서 떠나가심을 이토록 애도하는 까닭이 바로 그 때문입니다. 학형께서는 생전에도 말없이 큰 자리를 지키시더니, 아주 떠나면서도 말없이 큰 무게로 남게 됩니다.

 남재 김상협 학형! 먼저 왕생하시지만, 이승에 남아있는 우리는 두고두고 학형에 대한 그리운 정을 이기지 못할 것입니다. 우선 합장하여 비오니, 부디 명복을 누리시기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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