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국유사에는 이런 이야기가 있다. 당태종이 보낸 모란그림과 그 씨를 보고 선덕여왕이 『이 꽃에는 향기가 없을 것』이라고 말했다. 꽃씨를 심어 보니 꽃은 피었으나 과연 향기가 없었다. 어떻게 미리 알았느냐는 물음에 여왕은 『그림에 나비가 없기 때문』이라고 대답했다. 요즘 젊은 작가들의 작품에는 향기가 없다고 한다. 각 문학지는 특집이나 평론가들의 기고를 통해 요즘 작가들의 「대책없는 가벼움」에 심각한 우려를 표시하고 있다. 그들의 작품에 「나비」가 없기 때문일 것이다.
「창작과비평」 봄호는 투고작 심사후기에서 기계와 같은 딱딱함을 느끼게 하거나 지나치게 감상적인 수사에 빠지는 작품이 많다고 지적하고 있다. 「난초를 그렸는데 향기가 없다면 무슨 의미가 있겠는가. 맑은 물에 피어난 연꽃처럼 군더더기없이 정제된, 압축된 만큼 팽창력 좋은 단편소설의 정수를 우리는 대망하고 있다」.
문학평론가 권성우(세종대강사)씨는 이 잡지에 실린 「다시, 신세대문학이란 무엇인가」라는 평론에서 서사에 대한 훈련이 제대로 안된, 소설 이전의 끄적거림을 꼬집고 있다. 그는 인류사 이래로 존재해온 수많은 서사구조에 대한 다양한 섭렵을 거칠 것을 충고하고 있다.
최근 「시인은 숲으로 가지 못한다」는 빼어난 평론집을 낸 도정일(경희대교수)씨도 올해 신춘문예 당선시들을 평가한 「문예중앙」 봄호의 글에서 문학수업의 빈곤을 지적했다. 시쓰기란 사물에 새로운 이름을 붙여보고, 바꿔 말하고, 이상하게 말하기를 연습하는 것이라는 인식부터 돼 있지 않다는 것이다. 도씨는 다른 글에서 이미지만 좇는 영사기법에 의존하는 소설, 서사에 대한 투철한 의식의 부재, 고전을 섭렵하지 않는 잘못등을 열거했다.
또 있다. 한국일보에 3월부터 「사랑의 기쁨」이라는 소설을 연재할 최인호씨도 문학의 향기문제를 말하고 있다. 달기는 한데 설탕이 아니라 사카린같은 작품이 많다는 것이다. 연재소설의 제목을 아주 평범하게 정한 최씨는 신고전주의 작품을 쓰겠다고 말하고 있다.
이런 일련의 풍조는 「참을 수 없는 작품의 가벼움」에 대한 걱정에 이른바 컴퓨터문학에 대한 거부감이 겹쳤기 때문일 것이다. 문학의 위기현상이 심각한 일본의 경우를 보면서 미디어시대, 다매체시대를 맞은 우리도 그와 같은 과정으로 이행하는 게 아니냐는 걱정인 것같다. 최근 문학교육문제에 관심이 높아진 것도 관련이 깊은 일이다.
그러나 신세대문학이란 어쩔 수 없는 시대의 변화이며 흐름이다. 신세대문학은 주로 60년대 이후에 태어나 90년대에 의식적으로, 혹은 무의식적으로 80년대의 지배적 문학경향과 상반되는 작품을 쓰는 젊은 작가와 시인들의 문학적 성과를 말한다. 또는 이념과 내용에 관계없이 주로 60년대 이후에 출생, 90년대에 주목할 활동을 보이는 젊은 문인들의 문학적 성과를 가리킨다. 그들은 성장배경과 문학수업의 내용이 종전의 문인들과는 판이하다.
문학이 반드시 연령으로 진보하는 것은 아니리라. 하지만 그들도 점차 달라질 것이며 「동일집단」내에서의 다양한 분화를 보이게 될 것이다. 다만 이 시기에 그들은 위와 같은 지적과 비평에 겸허하게 귀를 기울여야 할 필요가 있다. 스스로 「나비」를 찾아 나서는 노력을 해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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