필자는 이 글을 하와이에서 쓰고 있다. 방학을 이용해 이곳에 와서 연구하면서 국내에서 못 구하는 자료를 구하고 닳은 머리도 재충전하고 있다. 외국에 나오면 모두 애국자가 된다는 말이 있듯이, 마음은 늘 고국의 되어가는 일들이 궁금하고 걱정스럽다. 물론 이곳에도 많은 교포들이 살고 있다. 대학에도 「한국학연구소」가 위용있게 지어져 있다. 1903년 사탕수수밭 노동자로 이민오기 시작한 때로부터 90년이 넘는 역사가 흘러 4만명에 가까운 한민족공동체를 이루고 있다. 온갖 어려움을 겪고 이만큼 자리잡고 사는 것을 보면 대견스럽기도 하다.
국내에서도 한민족공동체라는 말을 많이 하고, 특히 남북통일의 정책목표가 한민족공동체를 기본으로 하는 것임은 다 알고 있다. 남과 북이 한민족이라는 점에서 공동운명체가 아니겠느냐는 기본전제가 깔려 있는 개념임에 틀림없다.
그런데 해외에 나와 보면 이 한민족공동체의 개념이 근본적으로 절실하게 느껴진다. 우선 제일 먼저 드는 느낌은 한민족이 한반도 안에서만 아옹다옹 밀집되어 살 필요가 없고 힘이 뻗치는 만큼 세계의 방방곡곡에 진출해서 사는 것이 활로라는 점이다. 굳이 세계화를 얘기하지 않더라도 해외에서의 우리의 위상이 아직 얼마나 왜소한지 실감하지 않을 수 없다. 특히 이웃 일본의 실력을 해외에서 직접 부딪치지 않을 수 없고, 섬세한 곳에까지 영향을 미치고 있는 일본인들의 전략에 놀라지 않을 수 없다. 배울 것이 많이 있다고 생각한다.
국내에서 들려오는 소식들은 반가운 것도 많지만 대체로 지리멸렬하고 안타까운 내용들이라 우울해지기도 한다. 세계화를 논하는 당사자들이 왜 그렇게 근시안적이고 시대착오적 처신을 하고 있는지 속상하기도 한다. 어쩐지 아직도 우물안 개구리의 잠에서 깨어나지 못하고 있는 것같이 보인다. 세계가 지금 어떻게 급속도로 변화하며, 무섭게 실력경쟁을 하고 있는지 말로만 떠들지 정말 실천적으로 무엇을 대비하고 있는지 의심스럽기까지 하다. 그런 얘기를 일일이 다 쓸 수는 없고, 한민족공동체의 관점에서 남북관계에 관해서만 이 곳에서의 관찰을 지적하고자 한다.
이미 알려진 바와 같이 미·북한 양국간의 대표부가 조만간 설치될 것으로 전망되는 가운데 북한정부 및 종교계인사들이 잇달아 미국을 방문하고 있다. 4월말 평양에서 개최되는 평양축전행사에 대규모 미주지역 한인관광단을 유치하는 등 북한측이 미국진출을 앞두고 사전준비작업을 적극 벌이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이에 대해 한국정부는 구체적 대응방안을 어떻게 마련하고 있는지 모르겠지만 북한과 미주한인과의 교류 내지 「친북무드」는 다시 한번 중요한 이슈로 부상될 것같다. 이곳의 한 신문은 최근 한국을 다녀 온 한 교포에게 김영삼대통령이 『교민들이 단합해 정부홍보에 앞장서 달라고 부탁했다』고 보도하고 있다. 외교는 정부가 해야 할 일만 있는 것이 아니라 국민, 교포들이 맡아야 할 민간외교의 몫도 크다는 것이 사실이다. 그렇지만 민간외교도 정부가 제대로 방향을 잡고 휘청거리지 않는 모습을 보여줄 때만 가능하다. 지금 남북, 그리고 미국과의 관계는 한 마디로 서로 워싱턴에 와서 신경전을 벌이고 줄다리기를 하고 있는 모습이다. 과연 이것이 한민족공동체의 본연의 모습일까. 남북이 유엔에 동시가입했지만 그후 어떻게 달라졌는지 느낌이 오지 않는다.
위에서 하와이에 위용있는 「한국학연구소」가 서 있다는 얘기를 했는데, 이 연구소는 해외에 있는 유일한 독립건물의 한국연구센터이다. 박정희 대통령의 지원으로 건물을 잘 지었고, 그후 전두환, 노태우 대통령도 방문했고 김영삼대통령, 김대중씨도 모두 다녀간 곳이다. 이런 좋은 시설이 있는데, 막상 이곳에서 보면 한국관계 연구와 홍보가 제대로 활발히 되지 못하고 있다는 것이 솔직한 느낌이다. 한인교포사회가 1세기를 바라보면서 역사적으로 기념할만한 곳을 확보하고 자료를 보존하고 해야 하는 행사를 하는 면에서 너무 부족했던 것같이 보인다. 이런 모든 것들이 대통령이 말한 해외홍보에 속하는 것일텐데 말이다.
이왕 애써 세운 한국학연구소에서 남북한 학자들이 모여 한민족공동체의 문제들을 허심탄회하게 논의할 수 있으면 남북관계 개선에 큰 도움이 될 수 있으리라 생각한다. 이에 대한 정부의 특별한 관심과 지원이 있어야만 할 것이다. 세계의 무대 위에서 한민족공동체가 도대체 어떻게 생겨먹은 민족인가 웃음거리가 되지 않기를 간절히 기원하면서, 새 학기를 맞으러 서울로 돌아갈 짐을 총총 챙긴다.
기사 URL이 복사되었습니다.
댓글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