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8년간 창작의 붓 멈추지 않아 16일 86세로 타계한 아능 조용만씨는 30년대 일제치하로부터 지금까지 우리 문단의 역사를 증언해 온 문학인이었다. 1933년 프로문학에 맞서 순수문학을 표방하며 김유영 이종명 이효석 이무영 김기림 유치진 정지용 이태준등과 구인회를 결성했고 동료문인들이 일찍 죽거나 월북한 뒤에도 언론인으로, 영문학자로 노년까지 창작의 붓을 놓지 않았다.
1931년 「비판」지에 단편 「사랑과 행랑」(사랑과 행랑)을 발표, 등단한 뒤 84년 75세가 되어 세번째 작품집 「구인회 만들 무렵」을 낼 때까지 과작이었지만 꾸준히 글을 써왔다. 구한말부터 한국전쟁 직전까지의 서울이야기를 묶은 마지막 책 「경성야화」까지 따지면 58년동안 글을 써온 셈이다. 주로 체험에 바탕한 인생파경향의 작품을 써온 그는 한국전 당시 「북경의 기억」등 수편을 모은 첫 작품집을, 74년에 두번째 작품집 「고향에 돌아와도」를 냈고 「울밑에 핀 봉선화야」를 비롯해 일제시대와 해방기의 문화계 이면을 기록한 책도 여러권 써냈다.해방전후 세브란스의전 서울대 동국대에서 영어를 강의했고 매일신보 경향신문 국도신문 코리아타임스등에서 언론인으로 활약했으며 고려대 영문과 교수로 재직하면서 수많은 제자를 길러냈다.<김범수 기자>김범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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