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묵비권·변호사선임권 등 「미란다권리」 인정/경찰 마구잡이 연행관행 근본개선 불가피/“「강요된 확인서」 막는 장치도 필요” 서울지검이 9일 피의자를 체포할 때 반드시 피의자의 권리를 알려주고 「법절차준수 확인서」를 받도록 경찰에 지시한 것은 피의자 인권보호에 획기적 조치로 평가된다.
검찰의 지시는 경찰이나 검찰 수사관이 피의자를 연행할 때 현장에서 범죄사실요지, 체포이유, 변호인의 도움을 받을 권리등을 설명해 주라는 것이다. 또 연행과정에서 적법절차를 어기지 않았다는 사실을 당사자인 피의자에게 확인받아 수사기록에 첨부하도록 했다.
이같은 지시는 미국영화에서 경찰관이 피의자를 체포할 때 묵비권과 변호사 선임권등 이른바 「미란다 권리」를 일러주는 장면이 이제 우리나라에서도 낯설지 않게 된다는 것을 의미한다. 특히 「법절차준수 확인서」를 피의자에게 받도록 한 것은 경찰을 곤혹스럽게 할 정도로 파격적인 조치라고 할 수 있다.
미국은 66년 연방대법원이 에르네스토 미란다란 사람의 강간사건 재판에서 『구속 피의자를 조사하기전에 묵비권과 변호인의 도움을 받을 수 있는 권리를 알려주지 않고 얻은 진술은 법정에서 증거로 사용할 수 없다』고 판결, 이른바 「미란다 법칙」을 확립했다. 이 법칙은 이같은 피의자의 권리를 국가에 대한 국민의 권리로 규정, 「미란다 권리」란 용어를 낳았다. 「미란다 권리」는 묵비권과 함께 ▲피의자의 진술이 법정에서 불리한 증거로 사용될 수 있다는 사실 ▲조사에는 변호인을 참여시킬 수 있으며 ▲돈이 없으면 국가에서 변호인을 선임해 줄 수 있다는 사실등을 사전에 수사관에게서 고지받을 권리가 포함된다.
우리 헌법과 형사소송법도 이같은 피의자의 권리가 규정돼 있다. 그러나 구체적 실행규정이 없어 일선 수사기관에선 완전히 무시해 왔다. 특히 시국공안사건 피의자들은 수사기관에 영문도 모른 채 끌려가기 일쑤였다.
검찰의 이번 조치로 이러한 마구잡이 연행은 이론적으로는 사라지게 됐다. 경찰관이 피의자에게 「법을 지켰다」는 확인서를 받아야하는 입장이 됐기 때문이다. 법조계는 『가장 기본적인 사법개혁이 뒤늦게 이뤄졌다』고 환영하고 있다.
검찰의 획기적 조치는 문민정부 출범후 두드러진 사법개혁 분위기와 법원의 인권판결에 따른 것이다.
대법원은 지난해 10월 음주측정을 위한 경찰서 동행요구를 거절하고 시비를 하다 의경을 폭행, 공무집행방해죄로 기소된 운전자에게 『체포이유와 변호인선임권등을 알려주지 않고 강제연행한 경찰관의 행위는 적법한 공무집행으로 볼 수 없다』며 무죄를 선고했다. 이 판결이 나온 후 하급법원에서는 비슷한 사건에 잇따라 무죄판결을 내려 수사기관의 피의자 체포관행을 근본적으로 고치는 것이 불가피해졌다.
재야 법조계에서는 이같은 인권보호 관행이 정착되기 위해서는 제도 개선과 함께 수사관계자들의 인식이 전환돼야 한다고 지적한다. 수사관들이 종전처럼 아무런 설명없이 연행한 뒤 강압적으로 「법절차준수 확인서」를 받아 낼 소지가 있어 자칫 확인서가 인권유린을 은폐하는 안전장치로 둔갑할 우려도 있었다는 것이다.<이태희 기자>이태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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