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래시계」 인기원인 배우보다 역사성에 초점을 금강하구에서 얼음구덩이에 빠진 네 사람이 우리의 원시적 구조체제 때문에 모두 죽었다. 그중 한 사람은 무려 50분 동안이나 애타게 구조를 요청했으나 곡괭이로 얼음을 찍어가며 보트를 끌어당기는 한심한 119구조대와 언제나처럼 늑장 출동한 경찰 헬기 때문에 끝내 죽고 말았다. 충분히 살릴 수 있었을 소중한 생명을 죽게 내버려둔 것은 명백한 살인행위에 속한다. 촌각을 다투어야만 할 긴급구조체계가 왜 아직도 이 모양인가. 그렇게도 돈이 많다는 나라가 왜 아직도 119구급차에 응급처치요원을 동승시키지 못하고 있는가. 그러한 문제를 다루는 한국일보를 비롯한 각 언론의 태도는 사안의 중요성에 비해 아직도 많이 미흡하다는 느낌이었다.
비합리적인 것은 엘리베이터의 보수문제에서도 발견된다. 수많은 사람들,특히 어린이들이 날마다 사용하는 엘리베이터의 안전문제는 이제 정부차원에서 무슨 조치가 있어야만 한다. 하기야 정치하는 사람들은 국민의 안전보다는 여전히 파벌싸움에 바쁘고 부실공사 해놓은 아파트 단지의 집단 붕괴를 염려해야 할 판이니 그까짓 사소한 엘리베이터에까지 신경을 쓸 여유는 없을 것이다. 그러나 안전의식이 희박한 나라는 결코 선진국이 될 수 없으며 세계화의 대열에도 낄 수 없다는 것을 우리 정부는 하루속히 깨달아야만 할 것이다. 며칠전 엘리베이터를 수리하려다가 떨어져 죽은 어느 아파트 경비원의 죽음을 다루는 기사들을 보면서도 언론이 바로 그러한 심층보도까지 해주면 좋을 것이라는 아쉬움을 느꼈다.
우리 사회가 아직도 얼마나 비합리적인가 하는 것은 최근의 의사시험과 운전면허시험 그리고 대학입시 파동에서도 잘 나타나고 있다. 기초임상지식에 대한 테스트가 아니라 실제 진료에 거의 도움이 안되는 형식적인 의사시험, 교통법규에 대한 테스트가 아니라 실제 운전과는 무관한 정비 지식을 묻는 운전면허시험, 그리고 오로지 변별하고 떨어뜨리기 위해 만들어진 함정위주의 대학입학 수능시험등은 이 나라, 이 사회가 지금 어떤 상태에 와 있는 가를 상징적으로 보여주고 있다. 그러한 문제들에 대한 보도를 보면서 한국일보를 비롯한 언론들은 좀 더 과감하게 한국사회의 제도적인 병폐까지도 지적해 주어야만 한다고 생각했다.
쓰레기 종량제가 실시된 후 한국일보와 다른 언론들은 그것에 대한 문제점을 다각도로 보도했다. 예컨대 비닐봉투가 썩지 않는다든지 잘 찢어진다든지 하는 것들이 바로 그것이다. 그러나 우리 언론들은 종량제 실시 이후 슬그머니 없어진 거리와 지하철과 아파트 단지와 공공장소의 휴지통들의 행방에 대해서는 아직 말이 없다. 안그래도 턱없이 부족한 휴지통을 없애는 이유는 아마도 사람들이 쓰레기를 마구 갖다 버릴 것을 우려해서일 것이다. 도대체 왜들 이러는가. 우리가 언제부터 겨우 몇백원 밖에 하지 않는 쓰레기 봉투값을 아까워했는가. 문제는 그것이 절약심이 아니라 이기주의의 발로라는 데에 있다.
「모래시계」라는 드라마가 최근 장안의 화제가 되고 있다. 한국일보를 포함한 언론들이 경쟁적으로 그 드라마에 대한 기사를 내보내고 있음은 물론이다. 그 드라마가 성공한 이유는 그것이 단순히 학생데모나 광주사태나 삼청교육대같은 비극적인 현대사를 고발했기 때문이 아니라 그것들이 당시를 살았던 우리들의 삶과 죽음을 어떻게 바꾸어 놓았는가를 다루고 있기 때문일 것이다. 그 드라마를 다루는 신문기사들 역시 배우들의 인기도보다는 과거에 대한 반성과 역사적 사건의 교훈에 대한 것이어야만 할 것이다. 바로 그것이 언론의 궁극적인 책임이기 때문이다.<서울대교수·영문학>서울대교수·영문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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