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위암말기의 몸으로 아시안게임금 “갈채”/처절한 투병 불구 죽음벽 못넘고 삶마감 「비운의 레슬러」 송성일(상무)선수가 설 이틀 전인 29일 상오9시 삼성의료원에서 끝내 숨졌다.
송선수는 암세포가 자신의 몸을 갉아 먹는줄도 모르고 지난해 10월 히로시마(광도)아시안게임 그레코로만형 1백㎏급에 출전, 엄청난 복통을 극복하고 금메달을 획득한 투혼의 상징이었다. 그러나 병마에는 이기지 못하고 26세의 젊은 나이에 영면의 길을 떠나고 말았다. 모처럼 가족들과 함께 보내려던 꿈을 뒤로 하고.
송선수는 단순히 위궤양정도로만 알았던 복통이 귀국직후인 10월11일 받은 정밀검사에서 위암말기로 판명돼 위의 3분의2를 잘라내는 수술을 받은뒤 처절한 투병생활을 해왔다. 수술경과가 좋아 10월29일 퇴원했으나 5일만인 11월3일 통증이 생겨 재입원했다. 그러나 당뇨등 합병증까지 겹쳐 지난달에야 치료를 재개했지만 의료진들도 이미 완치가 불가능함을 알았다고 가족들은 울먹였다.
그는 유럽세에 밀리지 않는 유일한 아시아권 중량급선수로 92, 93아시아선수권대회를 2연패하며 아시아를 호령한 한국레슬링의 간판선수였다. 그 자리에 오르기까지에는 남모르는 마음고생과 갈등 방황을 거듭, 레슬링인들의 가슴을 아프게 했다.
고교때 두번이나 가출했고, 87년 대표팀상비군으로 발탁된 뒤에도 한때 운동을 포기하고 웨이터 선원생활을 하는등 우여곡절 끝에 송선수가 마음을 다잡고 운동에 전념한 것은 91년부터. 어머니의 위암 악화소식이 결정적인 계기였다. 송선수는 아시안게임에서 금메달을 따낸 공로로95년 한국일보제정 백상체육대상 특별상을 받은 뒤 『지난해 위암수술을 받고 건강을 되찾은 어머니께 조금이나마 면목이 섰다』며 눈물을 흘렸다. 그러나 그는 자신을 다잡아 주었던 어머니와 똑같은 위암으로 짧은 인생을 마감하고 말았다. 빈소는 삼성의료원 영안실, 장례는 국군체육부대장으로 발인은 2월2일 상오10시30분. 3410―0468<김삼우기자>김삼우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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