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통일은 신사고지도자의 몫 이역만리 떨어져 한국을 연구하는 학자로서 먼저 한국 국민들에게 드리고 싶은 얘기가 있다. 한국속담에도 있지만 『고래등에 끼인 새우』는 더 이상 한국을 비유할 수 있는 말이 아니라는 것이다. 한국은 국민총생산(GNP)규모로 세계랭킹 10위권에 든 「민첩한 돌고래」다. 북한이 「사나운 바닷게」일지는 모르지만 한국을 비유하는「새우」나 「개발도상국」같은 자조적인 수식어는 이제 걷어치우자는 얘기다.
그런 차원에서 웅비하는 한국의 95년은 몇가지 예상되는 주변적인 상황에 따른 영향을 받을 것이다. 일본의 계속적인 정치불안과 북·미 제네바 합의이행을 위협하는 공화당우위의 미의회, 덩샤오핑(등소평)중국최고실권자의 임박한 죽음과 이에 따른 중국의 향방등이 한반도 정세에 변수로 작용할 것이다.
북한의 정치는 시계에 잘 잡히지는 않지만 한국의 입장에서는 지구촌의 다른 어떤 중대뉴스보다도 더 중요하다. 북한에서 나올 발표는 소소한게 아니라 그야말로 생사가 걸린 것이기 때문이다.
그 첫번째는 권력 승계의 시기다. 김일성사망 6개월여가 지나도록 김정일은 권력을 공식 승계하지 못하고 있다. 나는 김정일이 결국 권력을 승계할 것으로 보지만 그의 권력은 아버지만큼 강하지 못할 것이다.
둘째, 김정일은 무엇을 할 것인가. 경제가 날로 악화됨에 따라 북한은 중국식 개방을 더 이상 늦출 수 없으며 만약 이같은 흐름에 역행할 경우 북한내에서는 폭동이 일어날 위험도 있다. 현재 북한의 경제총량은 2백억달러규모로 남한의 최근 1년 성장치보다 못하다.
그러나 김정일이 할 수 있는 정책적 선택은 「뭣 피하려다 뭣 만나는 식」의 차악 고르기일 뿐이다. 지금의 북한으로서는 기존 강경노선을 지키든, 개혁을 하든 둘 다 위험하기는 마찬가지다. 독일식 흡수통일은 남북한 모두가 이유는 다르겠지만 바라지 않는 바일 것이다. 그러나 나는 여전히 그렇게 될 가능성이 아주 많다고 믿는다.
이 문제는 이 글의 가장 중요한 주제로 이어진다. 95년 남북관계는 개선될 것이다. 그러나 그러한 계기는 정부보다 기업 쪽에서 나올 것이다.
북·미간 제네바합의이후 한국기업의 북한방문은 이미 현실화됐다. 곧 대북투자가 이어질 것이다. 이같은 교류는 비록 늦은 감이 있지만 매우 바람직하다. 북한당국과 주민들의 태도를 부드럽게 할 수 있는 최선의 방도는 그들을 코너로 몰아넣는 것이 아니라 자본주의의 길로 유혹하는 것이다. 중국과 대만의 경우처럼 남북한간의 교역은 상호간의 공동이익을 증진시켜줄 것이 명백하기 때문에 최소한 서로에게 득이 없는 전쟁의 위험은 훨씬 줄어들 것으로 믿는다.
물론 아직도 이 모든 것은 남한보다는 북한에 달려 있다. 그들이 빗장을 걸어 잠그거나 「인민의 지상낙원」에 들어가는 특권의 대가로 1백만 혹은 2백만달러를 요구함으로써 남한의 재벌들을 이용하려 든다면 남북협력의 희망은 실현되기 어려울 것이다. 그러나 운좋게도 평양당국은 지금 이러한 어리석음을 걷어치워야 할 만큼 어려운 상황에 있다.
따라서 서울 시민들이 금강산을 주말여행하는 상황이 생각보다 빨리 올 수도 있다. 95년은 주변강대국들에 의한 비극적인 남북분단 50주년을 맞는 해이기 때문에 올해가 이 끔찍스런 분단의 비극을 뛰어넘는 해까지 된다면 더욱 의미가 깊을 것이다. 불행히도 이러한 상황이 그렇게 빨리, 그렇게 멋지게 올 것으로는 생각되지 않는다. 그러나 95년은 양쪽 주민들이 대립을 버리고 협력을 시작하는 해가 될지도 모른다. 이렇게 된다면 양쪽은 많은 이득을 보게 될 것이다.
좀더 멀리 내다보자. 나는 한반도가 금세기말안으로 통일되길 기대한다. 그것은 아득히 먼 미래의 일이 아니다. 그러나 한반도에 도래할 새로운 시대는 결코 지난날의 어두운 역사에 얽매여 냉전적 사고를 떨쳐버리지 못하는 좌·우파 정치인들에 의해 이뤄지지는 않을 것이다. 이는 미래를 내다보며 21세기 한반도의 새로운 통일이라는 숭고한 대의명분을 위해 구원을 접어둘 수 있는 새로운 지도자들의 몫이다. 나는 95년에는 이러한 사람들이 나타날 수 있기를 희망한다. 그런 의미에서 본격적인 지방자치시대를 맞는 한국의 유권자들은 중요한 선택의 기로에 서 있다고 볼 수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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