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겨울가뭄에 드러난 고향/댐수몰민 “착잡한 귀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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겨울가뭄에 드러난 고향/댐수몰민 “착잡한 귀향”

입력
1995.01.29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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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북 영천댐 이주민 정찬식씨/20여년만에 처음으로 옛마을 모습/“설날맞아 이주민 모두 둘러볼계획” 『기가 찹니다』 『저거 홍순목이 밭 아이가』 『이거는 우리집에서 취사용으로 사용하던 메탄가스통인데…』

 50년만의 겨울가뭄으로 수몰전 모습이 완전히 드러난 경북 영천군 자양면 영천댐 바닥에서 옛 집터등을 둘러보던 이주민 정찬식(67·자양면 성곡리 1053)씨의 주름진 눈가에는 금방 눈물이 맺혔다.

 부서져 내려앉은 학교, 지서건물 등 잔해들이 전장의 폐허만 같다.

 『이번 설에 객지로 이주한 사람들이 찾아와 이 모양을 보면 가슴이 아플 건데…』 정씨는 아침마다 쓸던 집앞 길에서 무성히 자란 강아지풀을 뽑으며 옛 고향땅의 향수를 떠올린다.

 80년 12월 준공된 영천댐이 75년부터 수몰되면서 고향의 흔적이 20년간 물속에 잠겼다 최근 다시 떠오르자 인근 수몰민들이 너나없이 몰려와 감격의 눈물을 흘렸다. 설전에 이곳을 다녀간 타향의 이주민들도 적지않다.

 밭 7천여평이 수몰된 정씨는 고향을 떠날 수 없어 현재 댐인근 이주지에 정착해 살고있다. 함께 온 유유원군(14·자양중 1년)은  『학교 복도에도 수몰 당시 마을 사진이 걸려있고 선생님도 수몰 때 얘기를 많이 해 주신다』며 『할아버지 말씀이 마치 옛날 이야기를 듣는 기분』이라고 말했다.

 영천댐 수몰민은 5백33세대 3천5백여명. 이중 46세대만 영천시 야사동 영천시청 옆 수몰민 집단촌인 자양촌으로 집을 지어 이주했고 나머지 주민들은 영천군내와 대구 서울등 타지역으로 뿔뿔이 흩어졌다.

 자양면 이원모(50) 부면장은 『이번처럼 과수원 공동우물등 마을 흔적들이 완전히 드러난 것은 처음』이라며 『올 설날엔 고향사람들이 차례를 지낸 뒤 모두 이 곳을 둘러볼 것』이라고 말했다.<영천=이상곤기자>

◎대청댐 이주민 박종태·홍성래씨/모교잔해들 발견하고 눈시울 붉혀/“다신 못볼줄 알았는데 그나마 다행”

 중부권의 대형댐에서도 긴 가뭄으로 수몰지역이 드러나자 설문턱에서 옛 고향터를 찾는 사람들이 늘어나고 있다.

 27일 하오 대청호변에 나온 박종태(전 문의우체국장·70·충북 청원군 문의면 미천리 228의 6)씨와 홍성래(농업·63·문의면 미천리 121의 68)씨는 자신들이 다니던 문의국교의 잔해를 발견하는 순간 남다른 감회에 젖었다.

 올해 칠순을 맞은 박씨는 『지난 80년 대청댐 건설당시 정든 고향인 옛 문의면 문산리땅이 수몰되는 것을 보고 영영 다시 볼 수 없을 것으로 생각했는데 올 설날엔 그 잔해나마 보게 돼 다행』이라며 눈시울을 붉혔다.

 박씨는 학교 자리에서 1백여 떨어져 시장통쪽에 있던 집터를 멍하니 바라보며 아무 말이 없었다.

 벽이 무너져내려 철골만 앙상하게 남은 교실터를 바라보던 홍씨는 국민학교 7년 선배인 박씨에게 『형님, 친구들과 함께 어울려 꿈을 키우던 교실이 이젠 물고기 집이 돼 버렸소』라며 쓴 웃음을 지었다.

 수몰당시 문의면사무소 총무계장을 지낸 홍씨는 문의국교 자리에서 취수탑쪽으로 1백여 떨어진 곳에서 면사무소 자리를 발견하고는 반색을 했다.

 성묘때 산 위에서 물에 잠긴 고향을 내려다보면 조상 뵐 면목이 없어 착잡했다는 이들은 『실향민들의 한결같은 바람이 고향땅에 망향탑을 세우는 일』이라고 말했다.<대청호=한덕동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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