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확한 희생자숫자 「역사의숙제」로 폴란드정부와 유태인들은 2차대전 당시 나치의 대학살 상징인 아우슈비츠-비르케나우 수용소 해방 50주년을 맞아 27일 비르케나우 수용소에서 공식기념 행사를 가졌다.
이날 행사에는 노벨상 수상자이자 수용소 생존자인 엘리 위젤과 세바치 웨이스 이스라엘 국회의장등 27개국 대표들이 참석, 정의롭고 인종차별없는 세계를 촉구하는 「평화호소문」을 채택했다.
행사 하루전인 26일 유태인들은 희생자의 90%이상이 유태인임에도 불구, 폴란드정부가 이 행사에 유태교 의식과 유태인 피해를 강조하는 배려를 하지 않는다고 반발, 별도의 행사를 갖기도 했다.
그러나 유태인들의 주장에도 불구하고 아우슈비츠―비르케나우수용소 희생자의 숫자는 반세기가 지난 현재까지도 정확히 밝혀지지 않고 있다. 패전이 임박하자 나치는 관련서류를 소각처분했을뿐 아니라 친위대(SS)도 모든 만행을 비밀로 묻기로 맹세하고 침묵을 지켰기 때문이다.
게다가 상당수의 희생자들이 가축수송열차에 빽빽하게 실려 수용소에 도착 하자마자 가스실에서 학살을 당해 희생자 집계는 더 어렵다.
아우슈비츠―비르케나우수용소는 유태인 말살정책의 표본이자 유럽전역, 특히 동유럽지역에 세워진 다른 수용소들의 중심이었다. 이 수용소는 독일이 폴란드를 점령한 직후인 1940년에 세워졌으며 1945년 1월27일 소련군에 의해 해방되었다.
역사가들은 이곳과 인근 수용소에서 약 1백50만명이 가스처형, 총살, 기아로 사망했으며 그중 유태인 희생자는 유럽등 20개국에서 잡혀온 1백10만명이 될 것으로 추산하고 있다. 그러나 증언과 단편적인 자료만으론 정확한 집계는 역부족이다. 인류역사의 가장 부끄러운「통계숫자」는 영원히 밝혀지지 않을지도 모른다.<크라쿠프(폴란드)외신=종합>크라쿠프(폴란드)외신=종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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