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내외 유명선수 거액유치 대대적 홍보/야구·스모이어 프로축구도 인기끌어내 일본 프로축구 저팬(J)리그는 93년 출범 첫해부터 폭발적 인기를 누렸다. 프로축구가 국기인 스모(상모)와 수십년 전통의 프로야구를 위협한 비결은 무엇일까?
돈, 바로 돈 때문이라고 사람들은 말한다. 리네커(영국) 지코(브라질) 리트바르스키(독일)등 외국 유명 선수들이 J리그에 합류한 것도 돈때문이었고 지금 이 순간 해외 유명 스타들이 J리그를 기웃거리는 것도 다름아닌 돈 때문이다.
야구에서도 돈의 위력은 발휘된다. 메이저리거가 야구 본고장 미국을 마다하고 태평양 건너 일본에 안착한 이유도 순전히 돈 때문이다.
94∼95시즌 미국 프로농구 NBA 개막식이 열린 곳도 미국이 아닌 일본이었다.
○국민위화감 없어
일본의 스포츠는 이처럼 막대한 돈으로 유지된다. 실력있는 선수에겐 어마어마한 돈을 주고 멋진 경기는 또 막대한 돈을 들여 유치한다. 평생 꿈도 못꿀 돈을 1년 연봉으로 거머쥐는 선수를 보고도 「위화감」을 느끼기는 커녕 당연시하는 게 일본인들이다.
J리그가 배출한 최고의 스타 미우라 가즈요시(삼포지량·28). J리그와 94미국 월드컵 지역예선서 맹활약을 보인 덕에 93년 1억엔이던 연봉이 이듬해에 2억4천만엔으로 껑충 뛰었다. 이 액수는 전세계 축구선수를 통틀어 10위권을 넘보는 연봉이다. 그러나 아무리 잘한다 해도 그를 세계 10위권 선수로 보는 사람은 없다. 고액의 슈퍼 스타를 만들자는 일본 축구계의 요구, 흥행성을 높일 수 있다는 소속 팀 베르디 가와사키구단의 계산이 그를 벼락부자로 만든 것이다.
「미우라 스타만들기」바람은 기어코 그를 축구 선진국 이탈리아로 보내고야 말았다. 『세계 최고 수준의 이탈리아 리그에 동양선수로는 처음으로 진출했다』는 언론의 호들갑 속에 그는 지난해 9월 이탈리아 제노바팀에 1년 계약으로 임대됐다. 언론이 그를 따라가 한동안 법석을 떨었다. 제노바팀은 일본 취재진 때문에 연습에 방해가 된다며 불만을 터뜨리기까지 했다.
지난해 11월 다카노하나(귀내화·23)가 스모의 최고 자리 요코즈나(횡강)에 올랐을 때도 일본 언론은 한바탕 야단을 쳤다. 신문은 몇날 며칠 다카노하나 특집기사로 도배질했고 TV는 「인간승리」유의 프로그램을 경쟁적으로 내보냈다. 장군이 승전고를 전하듯 부모앞에 엎드려 절하는 아들, 그런 아들을 「영웅」이라도 된듯 「모시는」 부모, TV는 이런 장면을 놓치지 않고 생생하게 보도했다.
요미우리 자이언츠의 마쓰이 히데키(21·송정수희). 고교시절 60개의 홈런을 날린 그는 93년 입단당시 언론과 팬의 각별한 관심을 받았었다. 그러나 기대와는 달리 성적이 형편없었다.
○라이벌 만들기도
당시 TV 중계를 하던 아나운서가 『마쓰이선수가 너무 방망이를 크게 휘두르는 것 같습니다. 좀 짧게 잡고 맞춰야 할텐데요』라며 타격 스타일을 문제삼았다. 그러나 해설가는 『마쓰이는 그런 선수가 아닙니다. 크게 잡고 휘둘러야 하는 선수죠. 곧 좋은 활약을 보일 겁니다. 좋은 성적을 낼때까지 기다려야지 나무라서는 안됩니다』라며 그를 두둔했다.
마쓰이는 그뒤 자이언츠팀의 3번타자를 맡을 정도로 실력이 늘었다. 그러자 이번에는 언론이 그를 세이부(서무) 라이온스의 강타자 기요하라(청원화박·28)와 비교한다. 기량으로 보면 기요하라가 아직 한 수 위지만 언론은 둘이 라이벌이라도 되는양 떠들어댄다. 이 역시 일본 언론의 고전적 방법이다.
일본의 프로 스포츠는 돈과 언론이 지배한다.<도쿄=박광희기자>도쿄=박광희기자>
◎일본국민의 스포츠 열풍/종목별 강팀 선호… 경기장마다 노래·춤·함성
지난해 11월말 해질 무렵 도쿄(동경)의 신주쿠(신숙) 뒷골목. 퇴근길의 샐러리맨과 쇼핑객 수백명이 약속이라도 한듯 발걸음을 멈췄다. 건물 외벽 스크린에 방영되는 다카노하나(귀내화)의 스모 경기를 보기 위해서였다. 누드 배우 미야자와 리에와의 염문으로 유명한 그는 잘 생긴 용모와 세련된 매너로 큰 인기를 누리는 선수다. 팬들의 기대에 보답이라도 하듯 그는 이 경기에서 멋지게 승리, 스모의 최고자리인 요코즈나(횡강)에 올랐다.
거리의 인파가 일제히 환호성을 올렸다. 어떤 사람은 발까지 동동 구른다. 실제 경기장의 열기는 이보다 훨씬 더했다<관중의 대부분을 차지하는 중년의 신사들이 나이를 잊은 듯 모래판으로 방석을 집어 던진다. 관중들이 그의 팔뚝을 만져 보려고 몰려든다. 경기장은 순식간에 열광의 도가니로 변한다> . 관중의 대부분을 차지하는 중년의 신사들이 나이를 잊은 듯 모래판으로 방석을 집어 던진다. 관중들이 그의 팔뚝을 만져 보려고 몰려든다. 경기장은 순식간에 열광의 도가니로 변한다>
얌전하고 조용하다는 일본인이지만 운동경기에서만은 이처럼 열광적이다. 스포츠 스타들의 손짓 발짓 하나하나가 모두 이야깃거리다. 실제 경기서는 물론이고 연습장, 심지어 집에서까지 팬들의 성화에 시달려야 한다.
우리와 가장 구별되는 점은 강팀을 좋아한다는 사실. 야구에서는 요미우리 자이언츠, 축구에서는 베르디 가와사키가 단연 인기있는 팀이다. 베르디 가와사키의 열렬한 팬이라는 회사원 스즈키(영목·32)씨는 『멋진 플레이를 펼치는 팀을 좋아하는 게 당연하지 않느냐』고 반문한다.
강팀이 벌이는 경기의 입장권은 구하기도 어렵다. 요미우리 자이언츠의 경우 홈 구장 백네트 뒤편 로열석이 모두 기업체 차지다. 연초 기업체가 좌석권을 무더기로 구입, 고객에게 선물로 제공하기 때문이다. 기업이 좌석을 입도선매하기는 스모도 마찬가지다. 대신 일반인은 스모 경기를 보러 갈 엄두도 못 낸다. 그만큼 스모 입장권은 값지고 소중하다.
일단 경기장을 찾은 관중은 정말 「미친 듯이」 응원을 한다. 일본 응원의 특징은 열광적이면서도 조직적이라는 것. 유니폼을 맞춰 입고 깃발을 흔들며 목이 터져라 외쳐대는 응원단의 모습은 일사불란하고 빈틈이 없다. 일반 관중도 응원단 못지 않다. 노래를 부르고 춤추고 고함지르는 모습이 신들린 사람을 방불케 한다.
높은 물가와 치열한 경쟁 때문에 위축될대로 위축된 일본인들은 경기장에서 해방감을 만끽하는 것처럼 보인다.<도쿄=박광희기자>도쿄=박광희기자>
기사 URL이 복사되었습니다.
댓글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