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의식혁명이 급하다 이만갑 칼럼(화요세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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의식혁명이 급하다 이만갑 칼럼(화요세평)

입력
1995.01.24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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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인간은 이성을 갖고 합리적으로 행동할 수 있는 능력을 가진 존재다. 그러나 인류역사상 이성과 합리적 사고가 사회의 지적 풍토를 크게 좌우하게 된 것은 서구에서 근대화가 시작된 불과 수세기전의 일이다. 한국에서 지도급 위치에 있는 사람들은 서양의 근대적 가치가 어떤 것인가를 어느 정도 알고 있을 것이다. 그러나 근대적 관념에 관한 지식은 어떤 자격을 취득하여 사회적으로 행세하기 위해 머릿속에 집어 넣은 지식이지 서구사회에서 보는 바와 같이 체험을 통해 희생을 치르면서 터득한 것이 아니다. 그러니까 매우 얄팍하여 쉽게 녹슨 전근대적인 의식잔재가 추잡한 모습을 노출하게 된다. 전근대적인 것이 모두 나쁘다는 것은 아니다. 사대부에서 볼 수 있었던 군자도 라든가 농민들 간에서 실천된 민주적인 협동정신, 일반서민의 낙관적이고 해학적인 생활자세, 자연에 몸을 담고 자연의 아름다움을 즐길 줄 아는 실학적 태도등은 그것이 승화되어 근대적 가치와 융합되면 현대사회에서도 휼륭한 기능을 수행할 수 있을 것이다.

 오늘의 한국인의 정신세계를 살펴 보면 대체로 다음과 같은 전근대적 요소들이 근간을 이루고 있는 것이 아닌가 생각된다. 첫째는 샤머니즘과 그것을 바탕으로 하는 민간신앙이다. 그것은 어느 정도 한국인이 보편적인 선의 가치를 추구하는데 지장을 주고 있는 면이 없지 않다. 둘째로 지적할 것은 신분의식이다. 서구의 현대인에서도 신분의식은 강하지만, 그들에 있어서는 공정한 업적평가에 의해 뒷받침되는 지위추구인데 비해 한국인의 신분의식은 높은 벼슬자리에 앉아 대대로 부귀영화를 누리려는 욕망에 치우치고 있다. 그리하여 권위주의적이고 정당성과 책임성을 결여하며 공공사회에 대한 기여를 도외시하는 경향이 강하다. 그러한 전형적인 사회적 성격을 우리는 구한말의 잔학한 아전들에서 찾을 수 있다.

 세번째로 들어야 할 점은 가족중심적 이기심이다. 자기 가족을 튼튼하게 하고 가족의 번영을 꾀한다는 것은 결코 나쁜 일은 아니다. 그러나 가족내의 인간관계가 권위적인 규범에 의해서 규제되고, 가족을 위한 행동이 보다 넓은 공동체의 안전과 발전을 해친다면 세계화는 고사하고 국민협동체의 건전한 존속조차 위태로워질 것이 분명하다.

 그러므로 한국의 각계 지도자, 특히 가치창조와 지적 풍토의 형성에 관련이 깊은 일에 종사하는 지도자들의 역할은 매우 막중하다고 하지 않을 수 없다. 그러나 불행하게도 필자가 본 바로는 우리나라의 지도층 인사들의 자질은 일반국민의 자질에 비해서 너무나 열악하다는 느낌을 불식하기가 어렵다.  좀 더 구체적으로 말하면 가장 뒤떨어진 사람들이 정치지도자들이 아닐까 생각된다. 모든 정치지도자들이 그렇다는 것이 아니라 전근대적 성격에서 벗어나지 못한 사람이 많다는 것이다. 그 다음에는 아마 종교분야의 인사들을 들지 않을 수 없을 것같다. 인간의 영적 생활을 인도한다는 그들의 사명에 비해서 종교계에는 너무나 못된 사람이 많은 것이 아닌가 싶다. 사법관, 교육가, 국민을 포함한 행정관료는 그래도 기능집단 중에서는 상당히 유능한 사람이 많은 것으로 생각된다. 그러나 권력과 금전에 관련이 깊은 부서에서 터져 나오는 갖가지 비리를 보면 아직 근대민주국가의 행정관료로서는 수준급에 도달하였다고 말하기는 이른 것으로 생각된다. 아마도 가장 수준이 높은 사람이 많이 모인 곳은 기업계일 것이다. 한때 거기에는 초기 자본주의사회에서 볼 수 있었던 더러운 현상이 광범하게 목격됐다. 그러나 그간의 경제발전과정에서 바람직스럽지 못한 많은 사람이 도태된 것으로 생각된다.

 가치의 창조와 지적 풍토의 형성에 직접 관련이 깊은 역할을 수행하는 것으로 기대되고 있는 학자 언론인 문화인은 어떨까. 스포츠와 예술, 예능, 기타 문화계에는 휼륭한 사람들이 많이 배출되고 있음을 보도를 통해 익히 알고 있는 바이다. 언론계에도 휼륭한 사람들이 많이 배출되고 있는 것같다. 그러나 그들 중에는 아직도 시민사회에 기여하기보다는 권력과 재부에 눈짓을 하는 사람이 적지않은 듯하다. 그런 현상은 학계도 예외가 아니다. 학자들이 얼마나 쓸모있는 지적 가치를 생산해 냈는가를 보면 곧 알 수 있는 일이다.

 서구사회는 그들이 이룩한 근대사회의 여러가지 결함을 발견하여 보다 나은 미래사회의 구축을 위해서 새로운 패러다임을 모색하고 있으며 그것을 위해서 아시아인의 경험으로부터도 많은 것을 배우려 하고 있다. 그런 상황에서 우리가 민족분단을 극복하고 선진대열에 진입하려면 새로운 도전의 자세를 취하여 하루 속히 낡은 의식을 청산해야 한다.<서울대 명예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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