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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족도 전재산도 강진폐허에 묻고/재일동포들 “이젠 어떡하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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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족도 전재산도 강진폐허에 묻고/재일동포들 “이젠 어떡하나”

입력
1995.01.23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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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망연자실 절망의 우리 혈육을 도웁시다”/본사 「함께사는 사회, 함께사는 세계」손길 펴기로/고베선 절반이 난민생활/민단라면·빵에 허기달래/수용소마저 나가면 막막/정확한 인명·재산피해/아직 파악조차 못해 재일동포들이 울고 있다. 간사이(관서)대지진은 한국인 특유의 강인한 의지로 질곡의 세월을 이기고 일구어낸 삶의 터전을 한 순간에 앗아가 버렸다. 차가운 겨울 임시대피소 마루바닥 위에서 모포로 몸을 감싼채 허기를 채우는 동포들은 좌절감과 서러움에 싸여 있다. 간토(관동)대지진 이래 가장 큰 피해를 낸 이번 지진은 재기의 의욕까지 파괴했다. 피해동포들은 더 나은 삶을 찾아 떠나간 사람들이 아니다. 그들은 우리 근대민족수난사의 희생자들로 그 땅에 남겨진 동포들이다. 그들의 고통은 국민들 모두가 당연히 함께 나누어야 할 몫이다. 한국일보사는 연초부터 벌이고 있는 캠페인 「함께사는 사회, 함께사는 세계」의 손길을 재일동포들에게 펼치기로 했다. 한국일보사는 지난 92년 미국 로스앤젤레스의 흑인폭동 재난때에도 국민들의 정성을 모아 재미동포들의 재기의 기틀을 마련해주었다. 한국일보사는 이 사랑의 손길이 재일동포들은 물론 일본이재민들에게도 확산되기를 기대한다.<편집자주>

【고베=이창민특파원】 22일 효고(병고)현 고베(신호)시 나가타(장전)구에 있는 대한기독교 고베교회.

○교회서 눈물의 예배

 지진 발생 후 맞은 첫 일요일인 이날 벽이 허물어지고 바닥에 금이 가 있는등 지진의 피해가 고스란히 남아 있는 교회에서 「눈물의 예배」가 열렸다.

 신발공장등 생활의 터전은 물론 고생끝에 모은 모든 재산을 지진과 화재로 몽땅 잃은 재일동포들이 하나 둘씩 모여들기 시작, 엿새만에 처음으로 얼굴을 맞댔다. 80여명 신자중 14명의 신자가 집과 공장을 잃었는가 하면 나머지 신자들의 집도 절반이 부서져 임시대피소에서 난민생활을 하고 있는 중이다.

○엿새만에 처음 만나

 교민들은 1층 대기실에서 반갑게 재회, 그동안의 안부와 대피소 생활을 화제로 오랜만에 잠시 근심을 잊었지만 얼굴에 가득찬 수심을 지우지는 못했다.

○집·공장 모두 폐허로

 상오 11시 전기도 끊긴 컴컴한 예배실에서 불과 20여명이 모여 묵도로 예배를 시작했다.

 예배에 나오지 못한 신자들의 안부를 걱정하는 주송자의 말에 예배실 이곳저곳에서 훌쩍이던 소리가 점점 커지면서 서러움에 복받친 흐느낌이 예배실을 메웠다.

 재일동포라는 악조건을 극복하기 위해 일본인들보다 서너배 노력으로 이를 악물었던 과거의 기억이 참담한 잿더미로 변해버린 공장과 안식처의 잔해와 겹치면서 솟구치는 눈물을 억제할 수 없는듯 했다.

 부모를 따라 나온 철부지들도 어른들의 울음에 덩달아 눈물을 흘렸다.<2면에 계속>

<1면에서 계속>

◎설움·멸시속 이역에 닦은터전 20초만에 산산이/4백여 동포신발공장 철골만/“안전지대” 보험안들어 더당황/심민단단장 “희망의 부싯돌이라도” 도움호소

 신종국 목사는 설교를 통해 『이번 지진으로 막대한 피해를 입고 고난을 당하고 있지만 생명을 보전한 것을 감사하게 생각해야 한다』며 『나보다 어려운 이웃을 도우려는 마음가짐으로 생활하고 이번 지진을 자신을 시험하는 계기로 삼자』고 당부하며 예배를 마쳤다. 예배를 마친 교민들은 붉어진 눈자위를 닦으며 집잃은 동료 교민들을 껴안고 서로에게 용기를 불어넣고 있었다.

 구두공장을 화재로 날린 이 교회 이병춘 장로는 『돈이란 언제든지 벌 수 있는 것』이라며 『보다 중요한 것은 서로를 소중히 여기며 자신의 일처럼 살피는 애정과 배려』라고 동포애의 소중함을 강조했다.

○동포애 소중함 강조

 악몽같은 지진의 기억속에서 벗어나 오랜만에 따뜻한 동포애를 확인할 수 있었던 교민들은 아침부터 내리기 시작한 차가운 겨울비를 맞으며 각자의 대피소로 돌아가야 했다.

 눈물의 예배에 참석했던 신자들 처럼 나가타(장전)구에 살고 있는 재일동포들은 대부분 가구라(신락)소학교와 오하시(대교)중학교에 마련된 임시대피소에서 악몽같은 하루 하루를 보내고 있다.

○하루한두컵물로 지탱

 지난 17일 대지진 후 이곳에 몸을 맡긴 재일동포 이재민들은 고베 총영사관이나 민단본부등에서 보내주는 라면과 빵으로 허기를 달래고 하루에 겨우 한두 컵의 물로 삶을 지탱하고 있다.

 새벽녘 곤한 잠속에서 벼락같은 재앙을 당해 무너지는 집에서 간신히 몸만 빠져나와야 했던 동포들은 임시대피소에서 공포에 놀란 몸을 모포 1장에 의지해 새우잠을 청하지만 그날의 악몽이 불쑥불쑥 찾아들어 도무지 잠을 이룰 수 없다. 지진으로 생긴 「폐쇄 공간에 대한 두려움」때문에 운동장에서 노숙을 해야 하는 이들도 있다.

 가족과 친지들의 생사를 확인하려고 아직도 폐허의 거리와 대피소를 발이 부르트도록 찾아다니는 수심에 가득찬 동포들도 적지 않다. 아버지와 아들, 누나와 동생등 가족들이 서로 부둥켜 안고 안도의 눈물을 흘리는 상봉장면도 적지 않다. 차가운 시신으로 변한 가족의 소식을 접한 동포의 서러운 통곡소리가 대피소를 울려도 누구하나 돌봐줄 기력이 없다.

 지진이 발생한지 6일이 지났지만 아직 정확히 동포 몇명이 참변을 당했고 재산피해는 어느 정도인지조차 제대로 파악되지 않고 있다.

 조총련계를 포함해 1만여명의 동포들이 코리아타운을 이룬 나가타구의 동포들은 개미처럼 일해 일궈놓은 삶의 터전을 지진으로 순식간에 잃어버렸다. 온갖 설움과 멸시속에서 짧게는 10년, 길게는 50년이상 이국땅에서 쌓아올린 생의 과실이 단 20초만에 무너진 것이다.

 이 지역 많은 동포들의 생업 기반이었던 4백여개의 신발공장을 비롯해 한인들이 소유했던 공장들은 앙상한 철골구조물만 남았다.

 더욱이 이 지방은 그동안 지진안전지대로 알려져 대부분의 동포들이 지진보험에도 가입하지 않아 수용소에서 나가면 당장 입에 풀칠조차 하기 어려운 딱한 사정이다.

○“어떻게 살지 암담”

 임시대피소에 수용된 변형규(48)씨는 『선대부터 피땀흘려 일군 삶의 터전이 송두리째 날아갔다』면서 『어떻게 살아야 할지 암담하기만 하다』고 말했다.

 재기의 다짐을 해보지만 잡아볼 지푸라기조차 보이지 않아 동포 이재민들의 절망과 비애는 자칫 자포자기로 빠져들지도 모른다.

 심기필(60) 효고현 민단단장은 『재기의 가능성이 조금이라도 엿보인다면 동포 이재민들은 결코 그냥 주저앉지 않을 것』이라며 『이들에게 희망의 부싯돌을 던져주는 것이 절실하다』고 고국의 도움을 절실히 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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