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폭력형사,인간쓰레기 싹쓸이/범죄에 지친 관객들 대리만족 강인한 개인주의자라 할 수 있는 돈 시겔(DON SIEGEL·1912∼1991년)은 빠른 속도와 긴장감 있는 범죄로 구성되는 액션영화의 장인이다. 꽉 짜여진 이야기 구성과 잘 연출된 액션신이 공존하는 그의 영화는 지성과 함께 흥분과 생동감이 균형을 이루고 있다.
시겔은 도시의 악몽이 돼버린 아메리칸 드림을 즐겨 다뤘다. 그의 도시는 인간 버러지들의 서식처로 이 버러지들은 냉소적인 고독자에 의해 가차없이 제거되곤 하는데 「더러운 해리」라는 별명의 샌프란시스코 형사 해리 캘라한(클린트 이스트우드)도 그같은 고독자이다.
해리는 시겔의 많은 주인공들처럼 폭력에 대한 비이성적 충동과 자기통제의 절박감 사이에서 고민하는 사회의 소외한이다. 그는 단순한 가치관을 지닌 단순한 인간으로 범죄에 대한 경찰의 무기력증에 좌절감을 느끼다 마침내 범법자 못지않은 폭력을 휘두르며 법을 집행한다.
관람자들이 「더티 해리」(DIRTY HARRY·워너브러더스)가 나오자 구름처럼 몰려들어 환호성을 지른 것은 해리가 범죄에 치를 떨던 자신들의 분풀이를 대신 해줬기 때문이다.
핫도그를 우물우물 씹으며 인상을 팍 쓰면서, 달랑 매그넘 권총 하나를 들고 백주에 혼자 은행강도들을 때려 잡는 해리의 멋진 모습은 범죄에 시달리는 시민들의 10년 묵은 체증을 가라앉히기에 충분했다.
군더더기 없으며 억세고 힘찬 폭력·액션스릴러 「더티 해리」는 폭력의 무대인 도시에서 일어나는 경찰과 범죄자 간의 도덕극으로 스타 파워가 막강한 주연배우가 혼자 설쳐대는 옛날 스타일의 영화다. 그래서 처음에는 존 웨인에게 해리역이 제의됐었다.
71년 크리스마스 시즌에 개봉되면서 엄청난 논란과 화제를 불러 일으켰다. 비판자들은 『목적은 수단을 정당화한다는 파쇼메시지 전달용 영화』라고 법석들을 떨었다. 도대체 경찰이 법의 이름을 내걸고 범법자나 다름없이 재산과 인명과 인권에 대해 막심한 피해를 입혀도 되느냐는 항의였다.
그러나 관객들은 이런 비판에 아랑곳 않고 쌍수를 들어 환영, 이스트우드는 슈퍼스타가 되었고 이후 「대스위시」(74년)를 비롯한 숱한 모조품이 쏟아져 나온다.
시카고태생의 시겔은 영국 케임브리지대에서 공부한 뒤 런던 왕립드라마 예술아카데미에서 연기를 수업했다. 배우의 꿈이 좌절되자 (이 꿈을 못버려서인지 시겔은 감독이 된 뒤에도 여러영화에 단역으로 출연했다) 워너브러더스사에 조사실 직원으로 입사, 편집을 거친 뒤 몽타지부를 창설했다. 40년대초 단편영화로 아카데미 감독상을 두 차례 받았고, 46년 스릴러 「평결」로 감독 데뷔했다.
60년대 들어 한동안 침체기에 빠져 TV영화를 만들다가 60년대 후반 이스트우드와 손잡으며 본격적인 실력 발휘를 했다. 두사람이 함께 만든 영화는 「쿠간의 으름장」(68년), 「현혹된 자」(71년) 및 「알카트라스 탈출」(79년)등이다. 이스트우드는 자신이 제작·감독해 아카데미상을 받은 「용서받지 못한 자」(92년)를 시겔에게 헌납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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