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회과학의 가장 오랜 명제의 하나는 「누가 보호자를 보호할 것인가」라는 것이다. 조직에는 언제나 지도자가 있게 마련인데 이 지도자를 올바른 지도자가 될수 있도록 누가 보호해야 할 것인가라는 이 명제는 민주주의이론을 만들어 내기도 했고 더러는 혁명의 구실을 찾는 기반이 되기도 했다. 한국정치사를 들추어 보면 누가 보호자를 보호할 것인가라는 대 명제보다는 누가 보호자가 될 것인가라는 하위명제에 대해서도 해답을 잘 못 얻고 있는 것같다. 지도자가 될 수 없는 사람이 지도자가 된 일이 많았고 그런 지도자를 믿지 못하는 국민은 위기가 왔을 때 보호자를 보호하기 보다는 보호자를 기피하는 현상으로 갔다. 정치만 아니고 사회의 여러 조직에도 이런 환경이 팽배하다. 얼마전 출근길 버스에서 사고가 난 일이 있었다. 84번버스가 미아리고개를 올라가고 있는데 차 엔진쪽에서 큰 폭발음이 났다. 출근길이라 차들은 고갯길을 꽉 메운 채 느림보걸음을 하고 있었다. 나는 뒷자리에 앉아있으면서 아마도 불이 났으면 서서히 뒤로 번지겠지 하는 마음으로 약간 여유를 갖고 일의 추이를 지켜보기로 했다. 그런데 불꽃이 차안에 번지기도 전에 버스유리창들이 확 열리면서 몸이 날랜 사람들은 모두 튀어 달아나고 창문탈출이 어려운 여자분들 얼마가 남아 운전사에게 빨리 문을 열라고 소리쳤다. 순식간에 버스는 거의 빈차가 됐다. 당황했던 운전사는 시동을 껐다 다시 켜보고 핸들을 꺾어본 후 별 이상이 없음을 확인하고 『괜찮아요, 뒤로 들어가세요』라고 드디어 손님들에게 고함을 질렀다. 아마 옆에 따라붙었던 대형차에 펑크가 났던 상싶다. 버스는 거의 텅빈 모양이 된 채 다시 미아리고개를 올랐다.
리더십이 형성돼 있는 사회구조를 상정해 보면 이런 경우 손님들은 일단 버스운전사의 지시를 기다리고 운전사의 결정에 따라 창문으로 튀든지 강제로 문을 열든지 한다. 그러나 우리 사회는 시내버스운전사가 손님의 안전을 책임질 수 있다는 생각은 별로 없다. 버스운전사도 그렇게 생각하고 손님도 그렇게 여긴다. 정치에도 그런 현상이 있는 것은 아닌가.
지금 여야는 모두 70대정객 거취문제를 놓고 논란하고 있다. 한쪽에서는 밀어내려 하고 다른쪽에는 안 밀려나려 하고 있다. 어느 쪽이든 국민이 그 지도자를 얼마나 보호할 것인가를 물어보는 것이 지도자선출과정의 첫 질문이 되어야 할 것이다. 국민이 보호하는 지도자를 선출하게 될때 위기에 지도자와 국민이 다같이 배를 지키는 역사를 만들 수 있기 때문이다.<편집위원>편집위원>
기사 URL이 복사되었습니다.
댓글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