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 일본 및 러시아의 외무장관들은 새해 한국일보와의 서면 인터뷰에서 95년을 남북통일 여정의 중대한 전환점이 될 것이라고 진단했다(4일자 1면,5일자 4면). 지난해 10월 북·미간에 핵문제협정이 체결됨에 따라 연초에 평양과 워싱턴에 각각 양측 연락사무소가 설치될 예정인데 이런 북한의 국제무대 진출이 한반도에 엄청난 변화를 가져올 것이라는 판단에서 이런 예측을 하는 것이라고 세 외무장관은 말하고 있다. 민족이 합쳐야 한다는 기본 명제는 남한이나 북한 모두 「피는 물모다 진하다」는 논리아래 공통으로 간직해 왔다. 이를 체제의 벽이 가로막아 왔었다. 때문에 비록 미국이라는 제3자를 통해서라도 손을 맞잡을 기회가 얻어지면 양쪽간의 왕래속도는 번개처럼 빨라질 수 있을 것이다. 이런 단계에서 남북한 양국정부는 지금까지의 허상을 벗고 좀더 솔직해 질 필요가 있다.
일단 남북간 접촉이 어떤 경로로든 이뤄지기 시작하면 어차피 남북한의 실체가 스스로 드러날 것이기 때문이다. 남쪽 자본주의의 잘못된 측면이 실제 그대로 북한사람들에게 드러나게 될뿐 아니라 북한의 허상도 남한에 낱낱이 공개될 수밖에 없을 것이다.
북한은 이제 지난 50년간 지배해 오던 독재자도 죽었고 경제도 죽었다는 것을 시인해야 한다. 현재 북한이 갖고 있는 유일한 재산은 독재자가 남기고 간 독재체제 밖에 없다. 이 독재체제를 갖고 북한은 그동안 국제사회를 위협도 해왔고 또 그 위협으로 상당한 외교적 대가도 얻었다.
그러나 일단 북한이 북·미관계개선을 통한 국제사회의 일원으로 나온다면 이 독재체제로는 아무 것도 할 수 없다는 것을 알아야 한다. 독재자는 독재체제를 만들 수 있고 일시적으로는 가끔 경제를 살려내기도 하지만 독재자가 남기고 간 독재체제로는 새 독재자를 만들지도 못하며 더군다나 죽은 경제를 살려낼 수는 없는 것이다. 독재체제는 청산해야 한다.
미국은 지난해 말에 일어난 미군 헬리콥터조종사 사건으로 북한독재체제에 대해 교훈을 주려 하고 있다. 미국공화당측은 북한군사정부에 대한 40억달러의 경제원조계획을 재검토할 뜻을 이미 밝히고 있어 북한이 재산이라고 생각하는 그 군사독재가 국익에 약영향을 끼친다는 것을 증명하고 있다.
남한은 통일을 이해득실로 계산해 왔다. 남북통일을 잃어버린 내땅을 찾는 것쯤으로 생각해 오다가 요즘은 통일비용이 너무 많이 든다는 이유로 통일자체를 꺼리는 경향도 있다. 모두 천민자본주의식 계산의 결과이다. 북한은 남한땅은 아니다. 비록 통일이 된다하더라도 그것은 한반도땅이지 남한땅은 아닌 것이다.
북한의 경제는 현대국가 개념으로 보면 분명히 죽었다. 그러나 불과 한세대전의 남한의 입장에 비춰보면 주택공간을 비롯한 최소한의 의식주문제를 해결하고 있어 발전가능성의 면에서는 60년대의 남한보다 결코 못하지 않게 돼있다. 남한은 서독이 동독을 병합하면서 돈을 물쓰듯한 그런 부를 갖고 있지도 않고 갖고 있더라도 그렇게 해서는 안된다. 대신 남한은 북한 자녀에 대한 교육을 맡야야 한다. 적절한 투자도 할 수 있을 것이다.
북한독재체제는 분명 남한의 무력으로는 무너뜨릴 수 없다. 북한이 경제발전을 해가는 가운데 스스로 독재체제를 청산할 것이나, 이런 일이 이외로 일찍 올 수도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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