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식량기금선 파키스탄보다 덜내/올 정규분담금 세계서 17위 “무색”유엔은 항상 돈에 허덕인다. 부트로스 갈리 사무총장은 기회가 닿을 때마다 유엔이 제대로 활동하려면 회원국들의 기여가 보다 적극적으로 이루어져야 한다고 호소한다. 실제로 소련붕괴이후 유엔의 역할과 기능이 갈수록 늘어가면서 재정난이 중요한 과제인 것이 사실이다.
유엔의 이런 재정난 때문에 벌어지는 현상이 가지각색이지만 그중 하나는 돈을 많이 내는 국가가 목소리를 크게 내며 행세한다는 것. 크고 작은 각급 회의체에서 행하는 각국 대표들의 발언은 유엔에 대해 분담금과 기여금을 얼마나 내는가의 기준에 따라 경청과 영향력의 정도도 다르다. 미국이나 일본등은 말할 것도 없지만 국력으로는 비교가 안되는 북구국가들은 전통적으로 인도적 기여금을 많이 내기 때문에 유엔무대에서는 독특한 영향력을 행사하고 있다.
지난해 총회기간에 우리나라는 세계식량기금의 의장국으로 선출됐다. 의장으로서 회의진행을 맡게된 한 외교관은 이 기금에 대한 우리의 기여금수준을 새삼스레 챙겨본뒤 의장석이 항상 가시방석으로 느껴졌다. 빈곤 기근지역의 비상식량지원을 위한 이 기금은 지난해말 현재 20억달러규모이나 우리나라의 기여금은 20만달러 수준으로 0.1%에 불과했기 때문이다. 0.1%라는 기여금수준은 유엔의 재정관행에 비하면 이례적으로 낮은 비율이다.
유엔의 재정은 해마다 책정되는 정규예산과, 유엔개발계획(UNDP)과 같은 각종 사업기구들을 위한 자발적 기여금으로 짜여진다. 정규예산이 보통 12억달러선인데 비해보면 기여금으로 충당되는 사업기구들의 예산도 UNDP 10억달러, 세계아동기금(UNICEF) 9억달러선등으로 규모가 결코 작지않다. 정규예산은 GNP 인구등 각국의 경제수준을 종합적으로 감안해 일정비율을 할당하는 의무분담금으로 충당된다. 올해 유엔의 정규예산은 12억6천만달러로 우리나라는 이중 0.8%에 해당하는 8백74만달러를 배정받았다. 1백85개 회원국중 유엔정규예산에 대한 우리나라의 기여순위는 지난해 21위에서 17위로 뛰어올랐다.
그러나 자발적 기여금 규모를 보면 사정은 매우 달라진다. 지난해 주요 경제개발기구에 대한 우리나라의 기여금은 UNDP UNICEF등을 포함, 17개 기구를 대상으로 총3백60만달러였다. 이는 전체회원국 기여금의 0.1%에 해당하는 수준. 그러나 대부분 국가들의 기여금수준이 정규 의무분담금과 비슷한 수준을 유지하는게 유엔내의 일반적 추세이고 보면 우리의 기여금수준은 일반예산분담금수준에 크게 못미치는 실정이다. 세계식량기금 의장을 맡게된 우리나라의 외교관이 어려운 입장에 놓이게 된것도 이같은 재정관행 때문이다. 이 기금의 경우 특히 액수로 보더라도 중국이 2백20만달러, 인도 1백90만달러, 파키스탄이 72만달러로 경제수준에 비해 우리보다 많이 냈다. 또한 우리나라가 지난 62년부터 92년까지 30년간 약 7천만달러의 수혜를 받은 UNDP의 경우 지난해 우리나라 기여금이 1백만달러 남짓한데 비해 정규분담금 비율이 0.16%에 불과한 인도네시아가 1백10만달러를 냈고 0.36%의 분담금을 낸 인도는 4백10만달러를 낸 것으로 집계되고 있다.
우리나라의 이같은 사정은 경제성장속도가 다른나라에서 찾기 어려울 정도로 매우 빨랐다는 점, 또한 그동안 유엔의 정식회원국으로 가입하지 못했던 특수성으로 인식되고 있다. 그러나 유엔에 가입한지 이미 4년째가 되고 내년 경제협력개발기구(OECD)가입을 앞두고 우리나라에 대한 회원국들의 기대수준은 갈수록 압력으로 작용한다는게 현지의 진단이다. 현지의 한 외교관은 『유엔 경제개발기구에 대한 기여금을 높이기 위한 방안으로 정규분담률에 따라 기여금수준을 강제로 정하자는 논의가 사무총장을 중심으로 추진되고 있어 우리의 기여금수준을 상향책정하는 것이 시급한 실정』이라고 전하고 『자발적 기여를 통해 후발개도국을 돕는 일은 외교의 세계화를 위해서도 적극적일 필요가 있다』고 주장했다.<뉴욕=조재용특파원>뉴욕=조재용특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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