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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도 외국서 일했다(사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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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도 외국서 일했다(사설)

입력
1995.01.12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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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구리 올챙이적 생각 못한다는 말이 있다. 요즈음 우리가 이런것 같다. 자괴가 앞선다. RMK, 필코, PE & A, 비넬…. 생소한 이름들일 것이다. 그러나 60년대 하반기에는 귀에 익숙했던 월남진출 미국건설 및 용역회사들의 이름이다. 소위 우리나라의 「월남기술자」들이 이들회사에 취업하면서 귀중한 외화를 벌어들였다. 한달급여는 대체로 월5백달러, 당시로는 적지 않은 돈이었다.

 63년부터 시작, 66년 한창때에는 1만여명에까지 달했던 「월남기술자」는 69년8월말까지 연인원 3만7천여명에 이르렀고 그동안에 이들이 본국에 송금한 외화는 모두 1억4천5백여만달러였다. 지금 돌이켜보면 보잘것 없는 금액일지는 몰라도 외화가 한푼이라도 아쉬웠던 당시로는 파월기술자 개인과 국가로서는 다같이 거금이었다.

 특히 당시의 「파월기술자」들은 부분적으로는 계약위반으로 곤란을 겪은 사람들도 있었으나 고용주인 미국회사나 주재국인 월남정부당국으로부터 폭행, 착취, 인간적 모욕같은 비인도적인 학대를 받아본 적이 사실상 없었다.

 오히려 한국인기술자들이 월남인에 대해 근거없는 우월감을 가졌었다. 사이공시(현재 호치민시) 주빈장같은 지역에서는 한국인기술자 촌(촌)이 형성, 월남 여인들과 버젓이 가정을 꾸리기까지 했다. 한국군의 파병과 미국회사에 근무하고 있다는 특수상황 때문이었겠지만 한국인 파월기술자들은 전쟁하는 나라에서 「1등국 시민」처럼 행동했다.

 이제는 중진국에 이어 선진국에 도전하는 우리나라로 네팔, 필리핀, 인도네시아, 방글라데시, 태국등 동남아 및 서아시아지역의 인력들이 몰려 들고 있다. 소위 「연수생」의 이름으로 들어오는 이들 근로자들은 지난해말까지 약2만명에 이르는 것으로 파악되고 있다. 그러나 불법체류자까지 합하면 이를 훨씬 상회(약8만)할 것으로 추산된다.

 문제는 이들을 고용한 주로 3D업종의 우리 중소기업들 사이에 부분적으로 임금을 체불하거나 또한 작업과정에서 욕설, 폭행등 인권침해의 불미한 작태가 나타나고 있다는 것이다. 『때리지 마세요』 『여권을 돌려주세요』― 폭행과 임금착취에 항의, 명동성당에서 무기한 단식농성을 벌이고 있는 네팔근로자 13명의 항변은 우리가 아직도 올챙이임을 입증해주는 것이다.

 우리는 이제 30여년전의 자화상을 돌이켜 봐야한다. 우리나라의 취업근로자가 바로 한 세대전의 우리 「파월기술자」인 것이다.

 정부는 외국인 취업근로자에 대해 노동조건의 개선, 인권의 보장, 국내근로자와 동등한 산재혜택등 처우를 근본적으로 개선해줘야겠다. 이것은 또한 외교의 세계화이기도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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