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제나 오늘, 요 며칠 사이에 고요함 속의 긴장이 수십만의 가정 속에 맴돌고 있다. 전국 통틀어 78만명 가량이 대학의 입학원서를 써놓고 어느 대학, 어느 학과에 지원해야 할지를 망설여 온 바 있고, 급기야 어제와 오늘에는 그 중의 상당수가 대학별고사인 본고사와 실기시험을 치르고 있는 중이기 때문이다. 어디 그런 긴장 뿐인가? 이번 입시와 관련해서 각 대학이 전형료로 거두어 들인 돈이 3백50억원에 이른다고 하며, 대학가 주변의 방 하나를 빌려서 수험생을 이틀간 재우려는데 30만원을 들이지 않으면 안된다고 하는데, 과연 그 돈이 모두 어디에서 나오는가? 결국 그 긴장하고 있는 학부모들의 빠듯한 호주머니에서 나온다. 그 학부모들은 이미 자식들의 고3시절 모의고사를 위해서 순전히 모의고사용 시험지값으로 20만원 이상을 억울한 마음으로 부담해 온 터이다. 아울러 그 모의고사를 위해서 매월 수만원에서 많게는 백여만원이 넘는 과외비와 학원비를 부담해 온 터이다. 한 마디로 학부모들의 경제적, 정신적 진을 빼는 교육인 셈이고, 그렇게 진을 빼 온 몇년간의 노력 결과가 심판을 받는 날이 바로 어제와 오늘, 그리고 내일인 셈이기 때문이다.
어디 이런 교육이 학부모의 진만 빼는 교육이겠는가? 한창 젊음을 구가하며 건강하고 밝게 자라면서 자신들의 소질과 적성과 능력을 개발해야 할 나이의 학생들이 시험성적에 얽매여 아까운 에너지를 탕진하고 있지 않은가? 오로지 입학만을 위해서, 불필요한 공부를 하고 있는 학생들이 부지기수다. 자기가 가장 좋아하고, 잘하고 싶은 것과는 별개로 입학시험의 과목이 책정되어 있기 때문이다.
우리나라 교육의 문제는 그것이 국력의 신장에 기여하지 못하고 오히려 국력을 탕진하는 데 기여한다는 것으로 요약해서 말할 수 있다. 국가경제의 측면에서 보아도 매년 국가예산의 50%에 가까운 20조원이라는 돈이 사교육비로 통용되고 있어서 생산성 있는 자금의 결집을 방해하고 있다. 각 가정의 측면에서 보면, 초·중고생 자녀가 있는 경우 월 가계비의 최소한 30% 이상이 사교육비에 충당되고 있어서, 가계비의 불안정을 유발하고 있으며, 입시생이 있는 경우 온 가족이 그를 위해서 긴장 속에 살아야 한다. 물론 학생 자신들의 정신적 건강과 미래에 대한 준비가 희생되고 있는 측면도 있다.
이와 같은 국력의 낭비는 결국 국가경쟁력의 훼손과 연결되며, 세계화라는 국가의 21세기 정책목표와도 정면으로 배치된다. 국력의 신장과 활성화에 기여하지 못하는 교육이 분명하다면, 그것은 반드시 개혁되어야 한다.
국가경쟁력 강화와 세계화 대비라는 측면에서 교육이 맡아야 할 중요한 책무가 인간자원의 개발인 점은 누구나 쉽게 긍정하는 바이다. 그러나 인간자원을 어떻게 규정하는가에 대해서는 큰 시각의 차이가 있다. 하나는 인간자원의 개발을 쓸모있는 사람과 쓸모없는 사람, 유능한 사람과 유능치 않은 사람, 엘리트와 비엘리트등으로 구분하고 솎아내는 인재선발과정으로 생각하는 시각이고, 다른 하나는 유능하든 않든 간에 모든 사람 속에 잠재된 능력을 개발시켜 주는 일을 인간자원개발의 핵심적 의미로 보는 능력개발 시각이다.
예컨대 IQ 70인 학생에게도 그가 가진 능력 중 가장 경쟁력 있는 소질, 적성, 능력을 발견하고 개발시켜서 국력의 소비자가 되게 하기보다는 국력에 보탬이 되게끔 교육하자는 것이 후자의 취지이다. 천재는 천재대로 저능력자는 저능력자대로 각자 자신들의 최선의 능력이 발휘되게끔 하는 교육을 하자는 것이다.
국가경쟁력과 세계화는 이제 소수의 뛰어난 인재를 통해서 달성되지 않으며, 현재와 같은 입시선발제도를 아무리 기능적으로 효율화시킨다고 하여도 인재의 선발 자체가 불가능하다. 설사 아인슈타인이나 모차르트같은 천재가 우리나라에 다시 태어난다 해도 그들이 천재로, 영재로 발굴될 가능성은 거의 없다. 현재의 우리 교육체계는 인재발견과 개발에 기여하기보다는 오히려 그들을 부정시하고, 평범화시키는 데 기여할 것이다. 불행하게도 우리나라 교육개혁의 방향은 여전히 소수인재의 선발·분류의 시각 속에서 머뭇거리고 있다. 교육개혁의 옳은 방향은 그 시각에서 벗어나 국민 하나하나, 그가 천재건 저능아건 간에 상관없이 그가 가진 최선의 능력을 발견해서 개발시켜주는 쪽의 교육이다. 성적우수자 중심교육(상위 10%)이 아니라, 오히려 성적의 중·하위권자에 더 관심을 갖고 지도하는 교육이어야 한다. 곧 능력개발중심 교육체제가 교육개혁의 모델이 되어야 하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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