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해말 김영삼대통령이 민자당을 향해 세계화라는 화두를 던지면서 김종필대표의 거취문제가 표면화되자 민주계중심의 핵심당직자들은 항상「큰 구도」를 강조해왔다. 『당을 환골탈태시켜 제2의 창당으로 거듭나는 과업에 비하면 특정인의 진퇴문제는 사소한 사안』이라는 그들의 말은 김대표문제에 관한한 종종 「시인도 부인도 않는」 선문답의 수위를 거의 벗어나지 않았다. 하지만 이같은 태도는「얼굴없는 압박」에 시달려오던 김대표가 자중을 미덕으로 여겨오던 평소의 자세에서 탈피, 사퇴불가를 「공표」하는 상황을 맞자 적잖게 흔들리고 있다. 당직자들은 『당의 세계화는 조직 운영 사고전반의 틀에 변화를 모색하는 것인 만큼 누가 어느자리에 있고 없고는 부수적인 문제』라며 또다른 모호함으로 분란을 봉합시켜보려고 동분서주하는 눈치이다.
그러나 공식회의 석상에서 측근의원의 질문에 답하는 방식의 어설픈 시나리오를 통해서라도 자신의 입장을 밝혀야할만큼 절박감을 느낀듯한 김대표는 10일에도 무언의 시위를 계속했다. 반면 당직자들은 세계화의 초점이 지도체제에 맞춰지는 것을 애써 피하면서도 『제도와 사람은 함께 가는 것 아니냐』는 자락을 놓지 않고 있다.
이처럼 당지도부의 갈등과 혼선이 새해벽두부터 끊이지않자 당안팎에서는 『도대체 세계화의 이정표가 뭐며 주체세력은 누구냐』는 의문이 서서히 머리를 들고 있다. 아직은 『당도 이제는 변해야 한다』는 당위론 때문에 이런 불만들이 큰 목소리를 내지는 못하고 있지만 당에 연구과제만 던진채 팔짱을 끼고있는 청와대나 대통령의 의지를 제대로 소화하지 못한채 변죽만 울리는 당지도부가 심히 못마땅하다는 표정이다.
하지만 대통령으로부터 세계화의 과제를 떠맡아 머리를 싸매는 민자당을 보면 세계화가 거꾸로 가는듯한 인상을 지울수 없다. 한편에서는 대표가 알아서 처신해 달라며 다방면의 압력을 가하고 다른 쪽에서는 이를 「공작적 음해」라고 튀는 박토에서 어떻게 세계화의 싹을 틔울수 있을 것인지 참으로 수수께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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