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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름을 아끼라/임철순(메아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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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름을 아끼라/임철순(메아리)

입력
1995.01.05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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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태어나면서 이름을 선택할 수 있는 사람은 아무도 없다. 94년초 일본에서는 젊은 부부가 장남의 이름을 악마라고 지어 화제가 됐었다. 남들의 관심을 끌면서 성장해 이상한 이름을 불편해 하지 않는 강한 사나이가 돼달라는 게 작명의 동기였다. 부부는 명명권 난용이라는 당국의 제동에 걸려 이름을 바꿔 신고하고도 집에서는 아들을 「악마」라고 부른다고 한다. 조선시대에는 아들을 보지 못한 사람이 네번째 딸을 낳자 화가 나서 「무엇에다 쓰느냐」는 뜻으로 하자를 붙여 사하라고 이름지었다는 이야기가 있다. 두 가지 다 특이한 사례이지만 부모는 누구나 희망과 기대를 담아 자녀의 이름을 짓는다. 우리의 부모들은 자녀가 입신양명하여 부모를 드러내주는 훌륭한 인물이 되기를 소망해 왔다. 그런 기대 덕분인지 사람들은 어느 정도 이름을 닮아가는 것같다. 어떤 사람들의 얼굴은 특정한 글자를 연상시키기도 한다. 그리고 그 연상이 맞아 떨어지는 경우도 흔하다.

 사고와 비리로 얼룩졌던 94년에는 무수한 범법자들의 이름이 남들의 입에 오르내렸다. 저마다 의미있는 이름을 갖고 있으면서도 이를 아끼지 않았기 때문이다. 지조와 절개가 중시되던 시대에 선비들은 이름을 목숨처럼 아꼈다. 남의 이름을 함부로 부르지 않던 그 시대에는 아명과 관명이 따로 있었고 자와 아호가 사용됐다. 추사는 많은 호를 스스로 지어 써가며 요샛말로 자신의 퍼스낼리티(PERSONALITY)를 확대해 나갔다.

 대법원이 95년 한해동안 국민학생의 개명을 전면허용함에 따라 어린이들은 이름으로 인한 고민을 덜 수 있게 됐다. 하지만 성인들은 마음대로 이름을 바꾸지 못한다. 개인의 동일성에 대한 식별이 곤란해져 사회질서와 안정을 해치게 된다는 이유 때문이다. 결국 사람은 누구나 자신의 이름에 대해 책임을 져야 한다는 의미일 것이다. 

 새해가 시작됐다. 한해동안 자신의 이름에 얼마나 가치있는 의미를 더할 수 있을지를 생각하게 되는 시점이다. 95년은 모두가 이름을 아끼는 해가 되었으면 좋겠다. 청마 유치환의 「뜨거운 노래는 땅에 묻는다」는 시에는 「나의 이름은 나의 노래/목숨보다 더 귀하고 높은 것」이라는 구절이 나온다.<문화1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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