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권위통치저항의 양극화 행로/토론·타협중시 새전통 세워야 광복 50주년을 맞으며 지난 한국정치를 돌이켜보면 부끄러운 일들로 점철되는 가운데 그 수준은 오히려 퇴행한 감마저 없지 않다. 왜냐하면 정부수립 직후 국회가 열렸을 때는 자유와 민주에 대한 열띤 토론으로 의회정치의 진면목을 보이면서 표현조차 매우 점잖았다. 그러나 오늘의 한국정치는 이성적 토론의 장이라기보다 차라리 감정의 표출과 카타르시스적 대립의 장으로 계속 이어지고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국회가 경시당하면서 한국정치가 민주정치와 거리가 멀게된 직접적인 원인은 군부독재정치에서 찾아야 하겠지만 그 효시는 이미 제1공화국 시절 땅벌떼며 무술경관이며 헌병들의 의사당 난입과 국회의원 강제퇴장과 연행등이 자행됐던 시절로 거슬러 올라가야 될 듯 싶다. 이승만대통령 자신은 원외 자유당을 마지 못해 만들면서 처음부터 정당의 필요성을 인정치 않으려는 태도를 견지하여 의회정치이자 민주정치가 정당정치라는 서구식 도식을 부인하는 입장이었다. 이박사는 아마도 당시의 백성이 민주주의를 하기에는 그 연륜이며 의식수준이 모자라다고 판단했음이 분명하다.
가부장적 권위주의형태로 시작된 한국정치는 짧은 9개월짜리 제2공화국시절에 민주의 꽃이 잠시 피는 듯하다가 지고 만다. 세계 민주변화의 제2물결에 해당되는 그 시기는 민주국가의 어떤 가능성을 잉태하는 듯했으나 민간정부의 부패와 무능은 군부가 정치에 개입하는 빌미를 마련해주고 말았다. 어차피 우리는 어떤 엘리트가 집권하든 권위주의정치를 할 수밖에 없는 역사적 문화적 숙명을 지닌 나라인지 모르겠다. 그 후 정치는 30여년 동안 군부독재에 순치되거나 정반대로 저항의 화살이 되어 양극화하는 형상을 보이면서 기형적 변화를 경험한다. 둘이 아니고 하나인데도(불이화일) 자꾸만 너와 나는 다르다는 명제를 고집하며 공개토론과 대화, 그리고 비판과 타협이라는 민주주의의 절차적 원리를 체화시키지 못한채 허송세월을 한 것이다.
오늘의 한국정치는 일그러진 영웅들의 잔치판에 불과하다. 국회법을 고쳐 효율적 운영을 위한 대화의 장을 열어 놓았는데도 작년 정기국회가 공전되기를 4주, 국민의 세금으로 나라살림을 잘 짜라는 예산국회는 실종됐고 민생법안은 졸속으로 처리되었으며 아직도 고함과 야유와 같은 목불인견의 의정은 계속되고 있으니 그 정치를 누가 선진국가의 민주정치며 세계화에 부응하는 정치라고 하겠는가. 국회에서 벌어지는 품위 잃은 꼴을 보고 세계적 수준의 정치는 커녕 한국적이지도 못한 정치를 보는 마음만 안타까울 뿐이다. 법으로만 하는 것이 민주정치가 아니라 품위있고 여유있는 관행과 전통으로 버텨줘야 민주정치가 가능하다는 것을 이젠 충분히 배울 때가 지났을 텐데도 말이다. 아마도 정치의 본질이 그런 것인지는 모르겠으나 이 나라 정치의 주역들은 「이성적 합리주의」가 몸에 배지 못한 채 지극히 감성적임은 물론 의식구조조차 철저한 자기중심주의를 지키고 있으니 나보다 남을 앞세워야 할 공인의 기초가 되어 있지 않다고 말할 수밖에 없다.
문민정부의 등장이 민주정치를 보장하지 못한다는 주장이 설득력을 지니는 가운데 금년에 예정된 지방자치단체장 선거를 하면 「경쟁의 결과에 승복하겠다는 약속을 하는 것」이 민주정치의 핵심이라는 것을 알지 못한채 치졸한 경쟁의 장이 펼쳐져 국민을 실망시킬 가능성이 충분하다. 정치는 순항하지 못하고 역전과 퇴전을 반복할 것만 같아 안타깝다.
그렇지만 새해를 맞으며 좌절보다는 희망을 앞세워야겠다. 거의 불가능한 정부조직을 대대적으로 손질하면서 조직과 인력을 줄이고 바꾸며 민주행정의 길을 열어 놓듯이 정치도 사람들을 바꿔가며 80년대중반 이후 동구를 밀어붙인 세계적 추세인 「제3의 민주화 물결」을 적극적으로 파도타기해야 할 것이다. 정치는 정당과 의회만 잘한다고 해서 되는 것이 아니고 대통령에게 많은 것이 달려 있으며 권력기관의 권한행사 역시 정치수준을 좌우하는 지표라는 것을 우리는 알고 있다. 정치엘리트의 기본원리인 경쟁과 교체가 이젠 한국정치에서 본격화할 세대에 접어들었기에 그 가능의 지평은 훨씬 넓게 펼쳐질 것이라고 믿자.<서울대 행정대학원교수>서울대 행정대학원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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