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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들의 새해(장명수칼럼:176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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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들의 새해(장명수칼럼:1764)

입력
1995.01.04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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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젊은이나 어린이들은 믿기 어렵겠지만, 50대 60대 나이든 분들중에는 자기 나이를 정확하게 기억 못하는 사람들이 있다. 갑자기 누가 나이를 물으면 『가만있자, 내가 1940년생이고 이제 1995년이 됐으니 만55살이네요』라고 대답하는 사람들을 가끔 볼 수 있다. 나이 먹는 것에 대한 신선한 느낌이 없고, 한해가 가든 오든 덤덤한 사람들은 자신의 생이 이미 불타버렸다고 아쉬워 한다. 덤덤하게 해를 보내고 맞을 수 있다는 것 자체가 축복임을 그들은 모르고 있다. 자신이 걸식을 하면서 늙고 병든 걸인들을 돌보다가 세상을 떠난 꽃동네의 최귀동할아버지는 『얻어먹을 힘만 있어도 그것은 주님의 은총입니다』라고 말했다는데, 건강하고 풍족한 사람은 그 말을 이해하지 못할 것이다. 작년 한해가 힘들었던 사람들, 연말연시에 더욱 슬프고 고통스러웠던 사람들은 덤덤했던 날들의 은총을 비로소 깨달았을 것이다.

 떡국과 함께 나이를 한살 더 먹는다고 기뻐하는 아이들, 망망대해를 향해 항해를 시작하는 젊은이들, 일생동안 땀흘려 일한 결실을 거두는 풍요로운 중년·노년의 새해는 기쁨으로 빛난다. 그러나 고통스런 이들의 새해도 절실한 기원으로 아름답다. 세월은 하루하루 어김없이 이어지지만, 어제와 다른 오늘, 새해가 있다는 것은 구원이고 축복이다. 새해가 있기에 우리는 어제와 다른 꿈을 꾸고, 어제를 묵은 해로 흘려보내고, 새롭게 다짐하며 출발할 수 있다.

 신문사 편집국에서 국제부를 지나다 보니 파리의 한기봉특파원이 동료들의 망년회에 부쳐 팩시밀리로 보낸 시 한편이 놓여있었다. 지난 일년 14번이나 프랑스밖으로 출장을 다니며 뉴스에 쫓기던 그 특파원으로 하여금 시를 선물할 여유를 갖게 한 것도 신년의 힘이다. 알퐁스 드 라마르틴(1790∼1869년)의 「호수」라는 그 시를 우리들의 신년에 함께 읽고 싶다.

 <…내가 몇순간의 유예를 청했으나 부질없는 일/ 시간은 나를 피하여 달아난다/ 나는 이 밤에게 말한다/ 좀 더디 가라고/ 그러나 새벽은 이미 밤을 거두려 한다/ 사랑하자/ 그러므로 사랑하자/ 인간은 머물 항구가 없고/ 시간은 쉴 기슭이 없어라/ 시간은 흐르고 우리는 지나간다…>

 신년 휴가를 지내고 첫 출근하는 3일 전국에 눈이 내렸다. 많은 사람들이 눈을 맞으면서 각자의 새해를 향해 나아가고 있다. 눈은 기쁜이들을 더욱 기쁘게 하고, 슬픈이들을 어루만지고, 외로운 이들을 감싸주었다. 『새해 첫날 눈이 오니 기분 좋군요』라고 만나는 사람마다 교통지옥을 잊고 눈을 반겼다.

 연민처럼 축복처럼 우리들의 새해를 덮은 눈,<인간은 머물 항구가 없고, 시간은 쉴 기슭이 없어라…> 라는 쓸쓸한 노래까지도 포근하게 덮은 눈 위로 1995년이 밝았다. 새해가 있다는 것, 그것만으로 이미 큰 축복이다. <편집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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