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륙·섬사이 시련의 중간자역/한국전 암흑 올림픽으로 걷어 부르델과 같은 시선으로 보면 역사는 파장의 길이가 다른 세 가지 파동의 상호연관속에서 움직여 오는 것이다. 인물과 사건의 시간, 사회와 문물의 시간, 그리고 가장 긴 파장이 바로 지리적인 자연의 시간이다. 우리는 지금까지 한국역사나 문화를 사건중심 또는 인물중심으로 읽어 왔다. 그러나 파장이 긴 지리적 자연시간으로 보면 또 다른 역사의 한 자락이 보이게 된다.
사건이나 사회사로 보면 분명 광복 50년은 2차대전이 종식하고 일제 식민지로부터 해방된 문자 그대로 빛의 역사였지만 그와 함께 찾아온 국토·민족분단이라는 냉전의 세계사에서 보면 어둠의 역사로 점철된 암흑 50년이기도 한 것이다. 빛과 어둠이 혼유하는 이 모순의 한국 50년은 지리·자연의 파장이 긴 역사의 시간으로 조명해보면 반도성의 상실이라는 한 마디로 요약할 수 있다.
어떤 사건이나 사회문물은 인간의 의지로 변화할 수 있는 것이지만 국토와 자연은 불변의 것으로, 변한다해도 아주 느린 시간으로 옮겨가는 것이다. 한국의 지오 컬처(지정문화)를 결정하는 반도성도 그런 것이다. 분단의 역사는 정치 경제 이데올로기의 문제 이상으로 이 지오 컬처면에 커다란 변화를 가져 오게 한 것이다.
동북아시아의 질서는 대륙국가인 중국과 해양국가인 일본의 섬 사이에 있는 한국의 반도로 그 균형을 이루어 왔다. 수천년동안 독립된 문화를 갖고 있는 세 나라가 동북지역에 존재할 수 있었던 것은 이 반도라는 중화성이 있었기 때문인 것이다. 한반도의 반도성이 대륙세력이나 해양세력에 의해 반도성을 잃고 중화성을 상실하게 될 때 아시아는 늘 불행과 환난에 처했다. 몽고내습이 그렇고 임진왜란때가 그러했다. 전자는 대륙이 섬을, 후자는 섬이 대륙을 위협하는 징후로서의 반도성 상실의 위기를 의미한다.
일본의 한국강점의 식민지시대가 끝났어도 반도성은 여전히 회복되지 않은채로 남아 있게 된 것이다. 한국의 분단으로 북한은 대륙국가의 일부처럼 되어 버렸고 남한은 해양국가와 같은 섬처럼 되어 버렸기 때문이다. 지난 50년동안 한국의 긴장이나 통일을 향한 국면전환은 바로 냉전시대의 기온을 재는 한란계와 같은 역할을 했다. 동아시아의 반도가 세계사의 반도로 그 의미가 확대되었고 그 반도성의 회복이 동아시아는 물론 세계의 새 문명모델에 영향을 끼치게 된 것이다.
연금술사들은 납을 가장 중요한 금속으로 여긴다. 금, 은은 독립된 금속이지만 납은 그런 금속들을 접촉하고 매개하는 역할을 하는 금속이기 때문이다.지난 50년동안 금이나 은과 같은 금속처럼 군림한 것은 미국과 소련이었고 그 양극체제의 마찰은 바로 납이 없는 연금술시대의 상징과도 같은 것이었다. 한국전쟁은 세계가 융합과 중화력을 부정하는 반도성의 파괴였던 것이다. 마치 몽고내습이나 임진왜란때 한국이 겪었던 불행과 비극이 동아시아 전체에 어둠의 역사를 불러온 것처럼 한국전쟁은 바로 세계전체를 냉동시킨 냉전의 상징으로 작용하였다.
그러나 그와 반대로 서울올림픽은 바로 반도성 회복의 지표라고 할 수 있다. 「벽을 넘어서」의 서울올림픽 개·폐회식의 문화적 메시지는 반도성의 그 중화력과 매개의 의미를 세계에 암시한 역할을 한 것이다. 이것이 바로 포스트 냉전의 새 시대를 연 이벤트로서 동서가 처음으로 정치나 종교적 이념을 넘어서 세계의 젊은이들이 손에 손을 잡고 둥근 지구를 만든 시초가 된다. 독일의 장벽이 무너지고 소련이 해체되어 철의 장막이 걷히는 기운이 잠실벌에서부터 시작한 것이다. 남북한의 유엔 동시가입도 반도성의 회복이라는 선행지표의 하나라고 할 수 있다. 그때 한국은 유엔에 기념물로 월인석보의 금속활자 모형을 선물했다. 한국이 구텐베르크보다 앞선 금속문자의 창시자라는 것을 의미한다.
이 매개성이야말로 세계속의 한국역할과 광복 50년의 시련을 상징하는 반도라는 지오 컬처의 역사였던 것이다. 한국의 통일은 한국민족이나 정치적 문제가 아니라 동아시아와 그리고 세계 전체가 반도성을 회복하는 것을 의미한다. 매개자의 문화(이것을 정보문화라고 부르고 있지만), 상생의 문화모델을 위해서 우리는 50년동안 호된 시련을 겪으면서 세계무대에 등장하게 된 것이라고 결론지을 수가 있다.<전문화부장관>전문화부장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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