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졸속·무책임으론 세계화 요원/「극대화」보다는 「적정화」 추구를 광복 50년을 맞는 한국사회의 세계적 위치를 생각할 때 두 가지 기본시각이 필요하다. 그것은 「반만년 역사의 아름다운 금수강산에 살기 좋은 우리나라」라고 배워온 우리의 자연과 사회가 가진 정체성(정체성·IDENTITY)의 실상과 허상에 대한 정확한 인식과 그것을 세계화 혹은 국제화라는 보편성의 관점에서 냉철히 평가·검토하는 비판의식이다. 우리의 사회현실은 그동안 흘린 땀과 피의 결정이기에 매우 소중한 것이지만 보다 나은 사회상, 선진사회의 이념형을 잣대로 냉철히 반성하는 자세가 되어야만 발전을 기약할 수 있다.
한국사회의 위상을 수식하는 특징들은 수없이 많다. 개방적 평등사회를 외치면서도 건물마다 늘어나는 종친회와 화수회 현판들, 「잘 살아보세」정책이 이룬 경제성장과 중산층문화의 비대, 개발과 행정에 따른 집단이기주의와 여전히 국민의식을 지배하고 있는 가족이기주의, 사회변동과 세대갈등이 몰고 온 가치관의 혼란과 질서의식 상실등은 산업사회와 대중사회에로의 급전환에 따른 파행현상 내지 필요악이라고 볼 수 있을지 모른다. 세계의 어느 국가, 사회나 거대한 변화를 경험하고 있는 것이 사실이기에 이것은 얼마만큼 「한국적」인가의 정도문제일 수 있다.
그러나 「한국적」이라는 특수성이 증폭될수록 세계의 관점에서는 「이상한 나라」로 비쳐질 수밖에 없다. 공직자윤리는 구호뿐 국민의 세금까지 도둑질하는 부정부패, 거리의 기초질서까지 마비시킨 교통난과 심각한 환경오염, 인신매매 토막살인에 화장까지 하는 반인륜적 폭력범죄, 가스폭발처럼 자연적 재앙보다는 인재가 대부분인 대형사고, 이런 부정적 현상들은 우리사회를 세계화에로부터 먼 번지수로 뒤돌리는 불길한 징후들이다. 우리사회에서 터지는 문제는 세계의 뉴스로 전달되고, 즉각 국내에 역작용해 온다. 성수대교 붕괴로 외국으로부터 받은 보복은 얼마나 처절했던가! 더구나 이러한 사고와 문제들에 아무도 스스로 책임지려는 사람이 안 보이는 사회라고 비쳐질 때 비인간화한 사회, 「인간이 없는 사회」 「사회 아닌 사회」로 지칭될 수밖에 없다. 사실 들여다보면 공동체라 하기엔 너무 허약한 게토(GHETTO)집단의 집합이라 할 정도로 응집력이 결여되어 있다.
이제 더 이상 졸속과 무책임이 한국사회의 후진성을 나타내주는 레테르가 되어서는 안된다. 한국인도 세계인이며 쾌적하게 살 수 있는 안전한 사회를 이루어야 한다는 새로운 잣대로 우리의 삶과 사회를 가늠해야 한다. 한국인도 삶의 의미와 보람을 가꾸는 새로운 스타일을 체득할 때가 되었다. 그것을 위하여는 극대화의 논리에서 적정화의 논리로 전환해야 한다. 무절제한 자가용 승용차소유가 대중교통과 온 국민이 피해자가 되는 교통지옥의 나라로 만든다는 것을 알아, 차 안갖기운동이 자생되어야 한다. 서양의 여유있는 국민들이 오히려 「심플 라이프」(SIMPLE LIFE)를 즐기듯이 우리도 천민자본주의의 말초적 편의주의를 넘어서야 한다. 결코 허둥대거나 쓸데없이 신바람내지 않고 침착하고 계획성있게 임무를 수행해 가는 한국인상으로 탈바꿈해야 할 것이다.
광복 50년은 동시에 분단 50년, 세계의 유일한 분단국가로 창피하다. 남북통일도 못하고 무슨 세계화냐 하면 할 말이 없다. 정치인들의 책임이 크지만 국민일반의 사회적 책임도 크다. 통일이 되려면 남북간 어느 '정도 동질화과정이 있어야 하는데, 말로는 평등과 정의를 부르짖는 사람들이 자신의 「자유」(?)와 기득권은 조금도 양보하지 않겠다고 한다. 이런 이기주의적 모순이 통일은 물론 사회발전을 정체시키고 있다. 자칫하면 더욱 골이 깊게 아옹다옹 싸우는 반목과 질시의 사회로 뒷걸음칠 위험도 안고 있다. 우리는 적어도 지난 한해 그런 나사빠진 징조들을 충분히 보았다.
그러기에 새해를 맞으면서 한국사회가 세계적 위치를 어떻게 확보하고 가꾸어야 할까 하는 방향이 어렵지 않게 부각된다. 한반도에서 일어나는 모든 일들과 한국민의 삶의 방식 자체가 세계적 관점과 기준에서 불안하거나 유치하게 보이지 않도록 사회의 성숙도를 높여가는 것, 그러기 위해 헐렁해진 나사를 새로운 마음의 드라이버로 조이는 것이다.
기사 URL이 복사되었습니다.
댓글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