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년불황 탈출 「엔화공동체」 본격추진 「팍스저패니카」시대는 오는가. 냉전의 종결로 이데올로기 대신 경제가 중심인 시대를 맞아 막강한 경제력을 자랑하는 일본이 21세기에는 세계를 리드할 것인가. 지난 90년 영국의 경제주간지 이코노미스트의 도쿄특파원을 지낸 빌 에몬트의 「해(일)는 또 다시 진다」라는 책이 화제가 된 적이 있다. 「저팬 파워의 한계」라는 부제가 보여주듯 일본은 더이상 경제대국으로 발전할 수가 없다는 내용이다.
이 책은 출판즉시 전후최악의 불황과 맞물리면서 많은 관심을 모으기도 했다. 그러나 최근에는 상황이 또 달라졌다. 지난해 3월 경제주간지인 동양경제(동양경제)가 「해는 다시 떠오른다」라는 제목의 특집에서 『일본경제의 잠재성장력에 대한 과도한 비관은 금물』이라고 강조한 이래 「해는 다시 떠오른다」라는 말이 유행하고 있다. 와타나베 쇼이치(도부승일)상지대(상지대)교수가 「해는 다시 떠오른다」라는 책을 냈고 가라쓰 하지메(당진일)동해대교수는 『신기술로 해는 다시 떠오른다』고 주장하고 있다.
91년부터 시작된 일본경제의 불황은 경기순환과 거품경제의 후유증이 겹쳐 일반인들이 예상했던 것보다 훨씬 심각한 영향을 미쳤다. 93년도 실질국내총생산(GDP)성장률은 0%였으며 기업의 경상이익도 4년 연속 감소했다.
최근들어 일본인들이 일본경제의 저력을 강조하고 있는 것은 일종의 「반사작용」으로도 볼 수 있지만 그보다는 자신감의 표현이라고 하는 것이 타당하다. 일본정부도 최근 불황에서 탈출했다고 공식적으로 발표했다. 94년도 경제백서의 부제는 「혹독한 조정을 넘어서 새로운 프런티어로」이다.
이는 일본경제가 구조전환기를 맞고 있다는 의미다. 이번 불황 중 나타난 특징 중의 하나는 그동안 숨어있었던 일본경제의 구조적인 문제가 명확히 드러났다는 점이다. 「감기때문에 병원에 갔더니 고혈압이 발견된 식」(94년도 경제백서)이다.
90년 이후 감소추세에 있던 일본의 해외투자가 93년에 증가세로 돌아섰다. 이는 4년만에 처음이다. 지역별로는 동남아, 업종별로는 전기기계가 두드러졌는데 엔화가치가 1% 높아지면 제조업 전체의 아시아 직접투자는 1.6% 증가한다. 이때문에 일본에서는 「아시아 엔화(화) 공동체」라는 표현도 흔히 쓰이고 있다. 「대동아공영권」이라는 구호가 20세기말들어 새롭게 변신한 것이나 다름없는 이말은 일본의 구조조정과 맞물려 유행이 되고 있다.
와타나베교수는 『달러가 힘을 잃고 있는 반면 엔의 강세추세가 지속될 것이므로 아시아는 「엔을 사용하는 경제권(공엔권)」으로 가고 있는 과정』이라고 말하고 있다. 경제평론가 규 에이간(구영한)씨도 『21세기는 아시아의 시대이며 이는 곧 일본의 번영이 아시아 전체에 확산되는 시기』라는 주장을 펴고 있다.
21세기를 앞두고 일본이 가장 우려하고 있는 점은 고령화 사회의 심화다. 일본정부의 조사에 의하면 2025년 65세이상의 고령자가 전체 인구의 25%정도에 이르게 된다. 일본경제연구센터의 고사이 유타카(향서태)이사장은 『21세기 일본의 국내 최대문제는 고령화』라며 『이에 따른 생산연령층의 복지비 지출부담이 크게 늘어 이들의 불만을 어떻게 조절하느냐와 일하기를 원하는 노령층을 위한 근로기회 창출문제가 중요하다』고 진단했다.
불황에서 벗어나면서 일본경제는 새로운 환경에 재빠르게 적응하고 있다. 해를 다시 떠오르게 하고 있는 것이다. 일본종합연구소의 후루야 마사요시(고시진의) 연구조사담당이사는 사회당이 기본정책노선을 변경, 자위대의 존재와 미일(미일)안보조약을 인정한 점을 들어 『사회당으로서는 정권이냐 정책이냐의 갈림길에서 정권을 선택했다』고 지적했다. 실리(실리)를 중시하는 일본인의 성격을 나타낸 것으로 앞으로 일본은 주변환경의 변화에 맞춰 얼마든지 빨리 변신할 수 있음을 보여주고 있다. 전후 석유위기, 엔고위기등 수차례의 고비마다 일본경제 비관론이 심각하게 제기되었지만 단지 「우려」로 그쳤던 것은 기업과 가계, 정부가 위기를 극복하기 위해 노력했기 때문이다. 21세기를 앞두고 일본경제가 또 어떤 변화와 발전을 보일지 관심거리이다.<도쿄=이상호기자>도쿄=이상호기자>
◎좋은 엔고·나쁜 엔고/수입물가 하락… 구매력 높여 경기부양/경쟁력 약한기업 해외이전 “산업고도화”
최근 일본에서는 「좋은 엔고, 나쁜 엔고」라는 책이 베스트셀러가 되고 있다. 또 「초엔고 시대」라는 용어도 많이 쓰이고 있어 엔고라는 말이 일반용어가 됐음을 보여주고 있다. 93년 1월 달러당 1백25엔대에서 강세로 전환된 엔화는 마침내 지난해 6월말 심리적 마지노선이라는 1백엔대를 돌파했다.
그러나 최근의 엔고에 대한 일본인의 반응은 과거와는 다르다. 예전에는 엔고는 수출을 위축시켜 경기불황을 가져온다는 부정적인 견해가 지배적이었지만 이번에는 엔고는 수입물가를 떨어뜨려 실질구매력을 높이고 이에따라 경기를 부양할 것이라는 긍정적인 의견이 우세하다.
일본개발은행 조사에 의하면 제조업체의 86%가 앞으로 3년정도 90∼1백엔이 지속될 것으로 보았으며 이 경우에도 국제경쟁력을 유지할 수 있다는 대답이 70%였다. 특히 엔고로 큰 어려움을 겪고 있는 도요타자동차는 달러당 80엔에도 경쟁력이 유지된다는 월드카 개발계획을 발표해 놀라게 했다.
최근의 엔고는 산업공동화에 대해서도 종전과 다른 해석을 낳고 있다. 산업공동화를 통한 제조업 생산거점의 해외이전은 국내생산의 감소와 투자 및 고용기회의 상실등을 가져온다는 우려가 있었지만 최근에는 엔고가 경쟁력이 약한 산업을 해외로 이전시켜 결국에는 국내산업 구조를 고도화할 것이라는 긍정적 효과가 더 부각되고 있다.
즉 생산거점의 해외이전에 따라 자유로워진 자원을 보다 부가가치가 높은 분야에 이용, 국내산업전체의 효율성을 높여 결국 경제전체를 더 크게 할 수 있다는 논리다. 일본정부가 발간한 경제백서도, 주요 연구소의 연구결과도 거의 이런 맥락이다.
또 『일본은 미국의 경우와 다르다』는 견해도 있다. 일본경제연구센터의 우에무라 준조(상촌순삼)주임연구원은 『미국은 해외로 생산기술을 이전하면서 기술도 상당 부분 함께 갔지만, 일본은 될 수 있는 한 국내에 남기를 원하고 있어 기술을 대부분 보유하고 있다』고 분석했다. 기술이 남아있는 한 산업공동화는 큰 문제가 되지 않는다는 주장이다.<도쿄=이상호기자>도쿄=이상호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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