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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떻게 합쳤나 관계자 인터뷰(통일 3국을 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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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떻게 합쳤나 관계자 인터뷰(통일 3국을 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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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95.01.01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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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돈으로…총으로…입으로… 분단극복독일 베트남 예멘 3국은 각각 다른 유형으로 민족통일을 이뤄냈다. 독일은 구서독의 경제력을 배경으로 한 「흡수통일」이었고, 베트남은 전쟁의 수단을 통한 「무력통일」이었다. 이에 반해 예멘은 남북간에 상호 대등한 위치에서 대화와 타협으로 「합의통일」을 성사시켰다가 다시 분열, 무력으로 재통일을 이뤄냈다.

 독일통일 과정은 분단후 44년, 동독 공산정권이 수립된지 꼭 40년을 맞은 89년에 시작돼 90년 10월3일까지 1년여동안에 급박하게 이뤄졌다. 그러나 실은 독일통일이 급박하게 이뤄진 것은 아니었다. 서독정부는 오랜기간 통일의 기반을 다져왔다. 브란트정권때부터의 동독정권과 공존을 추구하는 이른바 「동방정책」을 펴와 동독국민들에게 변화의 바람을 유도했다.

 베트남의 통일은 무력통일이라는 점에서 모방할 수 없는 통일로 배격돼 왔다. 베트남의 분단과정은 한반도와 유사하다. 2차대전 이후 북위 16도선을 경계로 북부에는 중국군이, 남부에는 영국군이 진주했고 이를 계기로 북부와 남부가 이념과 체제를 달리하는 정권을 수립했다. 지난 75년 4월30일 사이공이 함락됨으로써 10여년간에 걸친 지루한 민족간의 전쟁은 끝이 났다. 베트남은 1년반의 과도기를 거친뒤 76년7월2일 통일을 선언하고 단일정부를 출범시켰다.

 예멘은 한때 합의통일을 이뤄낸 유일한 사례다. 이 때문에 분단국 통일의 이상적인 모델로 꼽혔으나 통일 4년만인 94년4월부터 내전이 발생, 북예멘의 무력제압으로 재통일을 이뤘다. 이에 앞서 남북 예멘은 지난 72년부터 18년간 끈질긴 통일협상을 벌여왔고 90년5월22일 그 결실을 이뤄낸 바 있다.

◎독일/위르겐 아레츠 신영방주 재건단장/“통일은 도약기회… 대가 치를만”

독일의 신영방주(구동독지역) 재건단장 위르겐 아레츠박사는 『통일은 대가가 있는 것』이라면서 『그러나 분단된 나라를 통일하기 위해서는 이같은 대가를 기꺼이 치러내야 한다』고 말했다.

통일후 내독성(우리의 통일원격)은 해체되고 독일의 통일정책 관계자들은 각 연방부처에 흩어졌다. 아레츠단장이 이중 대표적 인물로 총리실에서 정치경제등 각 분야의 내부통일작업을 총괄하고 있다.

『독일의 경우 통일의 교과서가 없었다』고 강조하는 아레츠단장은 『독일은 통일과정에서 여러개의 작은 실수를 저질렀지만 통일을 이뤄냈다는 점에서 가장 큰 실수는 없었다』고 말했다.

그는 『점진적인 통일과 과정도 물론 가능할 수 있다』면서 『그러나 독일의 경우 이같은 선택이 가능하지 않았다는 것은 역사가 증명할 것』이라고 말했다.

아레츠단장은 『과거 독일에서는 냉전구도가 끝난뒤에도 분단상태가 계속될 것이라는 잘못된 사고가 팽배했다』면서 『따라서 분단시 독일의 통일정책은 독일민족이 언젠가는 반드시 재통일될 것이라는 신념을 심는데 큰 역점이 주어졌다』고 말했다.

아레츠단장은 『89년 베를린 장벽이 무너질 당시에도 독일 야당의 중요인물 가운데에는 「통일은 이미 물건너 간 것이고 긴장상태가 끝난다 해도 두개의 독일은 존재할 것」이라고 말하는 사람들이 많았다』면서 『지난 10월의 선거를 전후해 이들중 대부분이 「급속한 통일을 택한 정부의 선택이 옳았다」는 식으로 입장을 전환해야 했다』고 밝혔다.

그는 이어 『현재 통일독일이 안고 있는 가장 큰 문제는 경제적인 동서간의 심리적 갈등』이라면서 『이같은 문제를 해소키위해 연방 정부차원에서 여론조사및 시민과의 직접대화를 통해 동독주민들의 의사를 최대한 반영시키고 있다』고 말했다.

그는 『구동독지역에 투입되는 막대한 재정규모는 서독인이 1년저축의 절반가량을 동독에 떼에주는 것과 같다』면서 『그래도 통일은 기회(CHANCE)이지 문제(PROBLEM)는 아니다』라고 말했다.【본=유승우특파원】

◎예멘/암 라부 만수르 하디 부통령/“통신·인적교류가 기폭제 역할”

 『통일의 지름길은 분단당사자간의 교류 활성화에 있다. 예멘 통일도 따지고보면 지난 80년대중반부터 가속화된 통신및 인적교류가 기폭제 역할을 했다』

 암 라부 만수르 하디예멘부통령은 『한국의 통일을 앞당기는 관건은 교류확대를 통한 한국정부의 민주주의 전파 노력에 있다고 믿는다』면서 『예멘은 먼저 사람과 통신, 방송의 교류가 점진적으로 이뤄졌기에 비교적 순조롭게 통일대업을 이룰수 있었다』고 밝혔다.

 남예멘출신으로 올초 내전당시 북예멘의 국방장관직을 맡았던 하디예멘부통령은 『통일을 명분으로 한 민족내 투쟁은 권력욕에 불타는 정치지도자에 의해 촉발되는 것』이라고 말한 뒤 『이는 한국의 통일과정에서도 유의해야할 사항』이라고 충고했다.

 하디부통령은 올해 남북간의 내전이 재발한 이유가 결코 지난 90년당시 상호합의에의한 통일방식에 문제가 있었던 것은 아니라면서 내전발발의 책임은 변화를 거부한 지도자의 정치적성향에 기인했다고 본다고 말했다.

 『남북예멘은 72년 최초의 정상회담이후 18년간 통일협상을 벌여왔다. 북예멘측은 인구가 남예멘에 비해 3배 많은 1천1백만명이었지만 양측은 대등한 위치에서 국가권력과 주요직책을 균등히 분배했다. 그러나 남예멘사회주의당(YSP)의 알베이드부통령은 자신의 권력야욕을 위해 통일협약을 위반하고 군사대결을 충동한게 결국 4년만에 내전으로 이어진 것이다』

 통일 예멘이 현재 직면한 가장 큰 문제를 경제의 어려움과 부패문제로 규정한 하디부통령은 『그러나 통일정부는 구남예멘 국유재산의 사유화와 민주화추진, 언론자유보장등을 통해 이같은 난관을 극복해나갈 수 있을 것』이라고 자신감을 보였다.

 그는 또『예멘은 이 지역에서 유일하게 다당제등 민주주의 정치와 시장경제체제를 추구하고있다. 이같은 제도가 우리에게 가장 적합하다고 생각하며 이웃나라들과 선린관계를 계속 유지하면서 통일예맨의 근대화에 매진해 나갈것』이라고 밝혔다.【사나=한기봉특파원】

◎베트남/뉴엔 쿠이 사회과학원장/“민족주의 승리불구 손실도 커”

 『베트남의 통일은 민족주의의 승리입니다』 베트남 사회과학원(NCSSH)의 뉴엔 추이 쿠이(62)원장은 베트남의 통일을 「민족주의에 의한 독립투쟁의 결과」로 규정했다. 사회과학원은 베트남정부의 정책결정을 학문적으로 뒷받침하기 위해 53년에 수상직속으로 설립된 기관으로 장관급인 쿠이원장은 국회의원이기도 하다.

 쿠이원장은 『외세를 배격하기 위해 남과 북의 인민이 한덩어리가 돼 이루어낸 베트남 통일과정에서는 너무나 많은 손실이 있었다』며 『지구상에서 유일하게 남은 분단국가 한국은 이런 손실을 최소화할 수 있도록 당사자간 협의에 의해 평화적으로 통일을 이뤄내는 것이 바람직하며 그렇게 될 것으로 믿는다』고 말했다.

 그는 특히 통일후 어떻게 빠른 시일내에 체제를 안정시킬 수 있느냐는 질문에 『정부의 기본이념을 그르치지 않는 범위내에서 양측의 체제를 최대한 인정하고 좋은 점을 서로 교환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밝혔다. 그는 남부 베트남의 초등교육과정은 12년이었고 북부는 10년이었는데 통일후 이를 남부방식인 12년으로 정한 것을 예로 들었다.

 그는 『북부의 주도로 이루어진 통일이지만 북부만의 체제를 고집하지 않았다』며 『통일 한국도 이같은 민족적 융합노력이 통일 직후에 가장 먼저 추진해야 할 과제일 것』이라고 조언했다.

 그는 특히 『경제체제만큼은 사회주의보다 남부의 자본주의가 효과적이라는 점을 인식하고 개인기업을 권장하는 정책을 펴고 있다』며 『베트남경제 전반에 걸친 개방정책은 베트남의 변할 수 없는 기본노선』이라고 강조했다. 베트남의 경제발전은 서방 각국과의 협력을 바탕으로 추진될 것이며 대부분 국영인 베트남기업들은 서방기업과의 합작을 통해 서서히 개인기업으로 바뀐다는 것이 쿠이원장의 설명이다.

 통일의 민족적 성과에 대해 쿠이원장은 『베트남의 통일은 영토와 주권을 되찾자는 전 인민의 염원이 이루어낸 결과로 지난 20년에 걸쳐 체제상의 완전한 통일이 진행돼 왔으며 이같은 노력은 이미 가시화되고 있고 앞으로 통일된 베트남의 여력은 경제발전면에서 하나된 힘으로 나타나게 될 것』이라고 밝혔다.

 그는 『통일을 이룬뒤 베트남은 정치 경제 사회 문화등 전 분야에 걸쳐 상당한 잠재가능성을 확인하게 됐다』며 『문화적으로 다소 다른 남과 북을 상호 보완적으로 개발해나가고 있는 베트남은 이제 정치적으로나 경제적으로 어느 나라보다도 강한 국가로 발전할 것』이라고 내다봤다.

 쿠이원장은 자신에 찬 목소리로 『베트남은 무한한 가능성이 열린 아침의 나라로 떠오르고 있다』고 힘주어 말했다.【하노이=이종재특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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