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한이 억류중인 미 헬리콥터조종사 보비 홀준위를 13일만에 송환한 것은 다행한 일이지만 송환에 관한 북·미간의 합의문은 불합리한 내용으로 일관돼있어 불쾌하기 짝이 없다. 북한의 억지와 부당한 요구에 대해 미국이 그대로 수용하는 지나친 유화적 자세를 보인 것이다. 미국이 헬기의 북한영공침범을 인정, 사과하고 재발방지를 다짐했으며 판문점에서 북·미간의 접촉에 합의한 것 등은 장차 나쁜 선례가 되어 북한의 정치적 악용이 우려된다 하겠다.
합의문의 부당성과 문제점은 너무나 분명하다. 먼저 이번 사건은 휴전협정규정에 따라 북·미양측이 공동조사하여 영공침범여부를 가린뒤 사과해야함에도 북한이 반대하자 순순히 시인, 사과하고 재발방지의 약속까지 한 것이다.
다음, 판문점에서 북·미군사대표간의 계속적 접촉요구를 미국이 수락함으로써 미국스스로가 현 정전협정체제를 무시한 점이다.
그렇지않아도 북한은 정전협정체제를 미국과의 협상을 통해 평화협정체제로의 전환을 목표로 정전체제의 무력화를 시도해 왔으며 바로 이번 송환협상에서 군사정전위대신 북·미간의 직접 대화체제구축에 성공한 것이다.
특히 석연치 않은 것은 미국측은 송환조건으로 「유감」표명과 유사사건의 재발방지를 약속하는 정도의 문서에 서명한 것 뿐이라고 한국정부에 설명했으나 북한의 언론매체들은 영공침입시인―사과에다 군사대화창구마련등 중대한 정치적 합의를 한것으로 보도한 점이다.
더욱이 북한은 전쟁포로인 비전향 장기수들의 북한으로의 조속송환요구에 미국이 필요한 배려를 했다고 주장하여 우리를 놀라게 하고 있다. 만일 그것이 사실이라면 북한이 미국을 통한 대남압력을 기도한 것이며 미국이 동의했다면 중대한 주권침해와 내정간섭이 아닐 수 없는 것이다.
결국 클린턴정부는 국민적 인기를 고려, 해가 가기전에 홀준위의 송환을 성사시키기 위해 북한의 정치적 의도가 깔린 억지와 불법적 요구를 모두 동의하는 우를 범했다고 할 수 있다.
더욱 한심스런 것은 북한이 한반도의 긴장완화와 안정의 틀이 되고 있는 정전체제를 더욱 무력화시키며 한국을 배제시킨채 대미직거래창구를 유지하고 있고 미국이 이에 따르는 불합리한 흥정을 하고 있는데도 한국정부가 핵협상에 이어 또한차례 철저한 구경꾼으로 전락한 점이다.
정부는 미국측에 대해 협상의 전말은 물론 비밀합의여부를 철저히 따져 북한의 정전위무력화기도를 저지해야 한다. 또 「비전향장기수」에 관한 합의가 사실일 경우 엄중항의와 함께 단호히 배격해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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