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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경 불조화의 94년 세계(사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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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경 불조화의 94년 세계(사설)

입력
1994.12.30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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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산 넘어 산이다. 이념적 갈등에 시달리고 군사적 대치상황에 지쳐 그렇게 기다리던 것이었지만 막상 현실로 불어닥친 냉전의 종식은 과거 보다 더 위험하고 힘겨운 시대를 열고 있다. 확실한 것이 없다. 공산주의 대 자본주의의 대치선이 무너지고 무한경쟁의 시대가 펼쳐지면서 국제사회는 지난 1년동안 위험하기만 한 「헤쳐 모이기」의 생존 게임을 벌였다.

 문제의 핵심은 정치와 경제의 부조화였다. 삶의 경제적 영역이 혁신적 발전을 거치면서 세계를 하나의 국경없는 단위로 재조직할 때 정치의 영역은 민족국가로 갈라진 분열상태였다. 그리고 그러한 정치와 경제는 서로의 영향력을 상쇄시켜가면서 국가사회의 안정에 잇따른 충격을 가하고 경기침체의 악순환을 일으킬 위험성이 높았다.

 그러나 각 국가와 지역이 내놓은 처방은 다양했다.

 구라파 지역은 다자주의와 지역주의라는 최첨단의 통상전략을 개발하면서 민족국가의 단위를 넘어서는 정치적 실험에 나섰고 개방과 개혁의 기치 아래 정부의 권한 및 역할을 축소했다. 게다가 이탈리아에서는 여기에 부패척결의 개혁마저 가미시켜 새로운 생존전략을 구상하려는 상상력을 발휘했다. 시장을 파괴하는 금권정치로는 무한경쟁의 세계화 시대를 헤쳐나갈 길이 없다는 진단이었고 보수정객의 부패를 인내해야 할 이유가 더이상 없다는 생각이었다.

 반면에 미국은 「냉전종식의 이익배당」을 받아야 한다고 주장하면서 UR의 비준을 강행하는 동시에 기이한 관리무역을 제안하고 FITA를 신설하려는 이중성마저 보였다.

 생존경쟁에서 이미 처진 동구권과 아프리카의 일부 국가에서 「헤쳐 모이기」는 더욱 파괴적인 양상을 띠었다. 민족주의가 사회주의 체제의 추락과 함께 불어닥친 힘의 공백을 다시 채워주고 정신적 허전감을 달래주면서 기존의 사회공동체는 해체의 위기에 몰렸고 역사는 근대 이전의 분열상태로 회귀하면서 종족분쟁과 종교전쟁의 수렁으로 내던져졌다. 심지어 김정일의 북한처럼 핵을 갖고 장난하면서 경쟁에서 살아남을 지렛대를 확보하려는 국가까지 있었다.

 경쟁이 더욱 더 치열해진 1994년은 역사가 시작할 때부터 존재한 「단위의 문제」에 다시 논쟁의 불을 댕긴 한해였다. 사회공동체의 기본단위는 무엇인가― 원시적인 군혼에서 출발하여 씨족과 부족 및 민족이라는 사회공동체의 확대과정을 거칠 때마다 인간이 던진 고전적 질문이 21세기의 문턱에서 다시 한번 살아나고 있는 것이다.

 그러나 갑술년 명확한 해답을 제시하지 못한 채 지나가버렸다. 을해년은 다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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