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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내/한국일보 선정 올 10대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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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94.12.29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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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격… 아픔… 변혁… 숨가쁜소용돌이○정부조직 대개편

 김영삼대통령은 12월3일 전격적으로 정부조직의 대폭개편을 단행했다. 오랫동안 필요성은 인정됐지만 공직사회의 반발과 우려되는 후유증 때문에 실행되지 못했던 대폭적인 행정조직축소가 문민정부에 의해 처음으로 이뤄졌다. 개발시대 경제성장의 중추역할을 맡았던 경제기획원이 없어지고 새로운 시대조류에 맞춰 정보통신부가 탄생했다. 전체적으로 1부1처26개국이 없어진 조직개편으로 1천2백명의 공무원이 감축되는등 1만여명이 자리를 이동했다.

○지존파 등 흉악사건

 시체소각로까지 갖춘 아지트에서 소윤오씨 부부를 납치, 살해해 불태우고 연습삼아 인명을 빼앗는등 지존파일당 6명의 무자비한 살인행각은 추석연휴의 전국을 충격 속에 몰아넣었다. 또 9월13일에는 불과 보름사이에 부녀자 6명을 훔친 택시로 납치,성폭행하고 이중 2명을 살해한 온보현 사건이 발생했다. 이에 앞서 5월에는 유학생 오렌지족인 박한상이 상속재산을 노리고 부모를 살해하는등 전대미문의 흉악사건들이 잇따랐다.

○수십년만의 가뭄,폭염

 낮기온이 40도가까이 오르고 열대야현상이 한달내 계속된 지난 여름은 최고기온으로는 반세기만의 무더위로,7월 한달중 고온현상으로는 1907년 기상관측이래 최고의 혹서로 기록됐다. 특히 숨막히는 폭염과 함께 수십년래의 가뭄으로 농작물이 고사하고 각종 용수가 고갈돼 물기근에 시달리는등 심각한 피해를 가져와 정부는 「범국민가뭄대책위원회」를 구성,비상대책마련에 부심했다. 여름가뭄은 가을 이후까지 이어져 남부지방엔 아직도 깊은 후유증이 남아 있다.

○장교탈영 등 군기문란

 9월27일 새벽 경남 울산군 육군53사단 해안초소장 조한섭,김특중소위가 하사 1명과 함께 무장탈영했다. 탈영동기가 「장교길들이기」등 사병들의 하극상과 보신을 위해 이를 묵인하는 상급지휘관 등 흐트러진 군기에 있었다는 점에서 국민들의 충격이 컸다. 또 10월31일에는 사격장에서 사병이 직속상관인 중대장과 소대장을 사살하고 자살했다. 군당국은 이들 사건을 계기로 엄정한 기강과 사기를 세우는 쇄신작업을 폈다.

○이회창 경질

 지난 4월22일 문민정부의 개혁얼굴로 여겨져 온 이회창 당시 총리가 청와대 주례보고직후 전격 사퇴했다. 감사원장에서 총리로 자리를 바꾼 지 정확히 1백28일만이었다. 전격사퇴는 당시 대북정책의 혼선을 막기 위해 청와대주도로 통일안보정책회의를 만들면서 총리를 배제한 데 대한 청와대와의 갈등이 촉발제가 됐다. 경질이냐 자진사퇴냐의 논란을 불러온 이회창파동은 정부의 개혁의지에 대한 국민의 의구심이 제기되는등 적지않은 후유증을 겪었다.

○12·23 전면개각 

 김영삼대통령은 12월17일 총리를 전격경질 한데 이어 23일 4명의 장관만 유임시키고 18개부처의 장관을 전원 교체하는 전면개각을 단행했다. 조각에 가까운 이 개각에서는 새로운 인물보다는 능력을 검증받은 인사들이 많이 기용됐다. 국정분위기를 쇄신하기 위한 전면개각은 세계화구상과 범여권포용이라는 특징을 지녔다. 개각과 함께 안기부장과 청와대 비서실장등 여권의 핵심포스트도 교체돼 마치 정권초반의 대규모 체제개편을 연상케 했다.

○12·12 정치쟁점

 민주당의 「12·12대공세」는 하반기 정국을 강타한 「A급 태풍」이었다. 12·12사건 관련자 기소유예조치 철회를 요구하는 민주당의 장외투쟁으로 11월초부터 1달간이나 국회공전사태가 빚어졌고 급기야 예산안날치기 파행을 불렀다. 이기택민주당대표의 12·12강공은 역사재정립의 명분으로 이루어졌지만 두 김씨를 상대로한 「홀로서기」투쟁으로 이해되면서 민주당내에 심각한 내부갈등을 불렀으며 이대표―동교동계의 관계재정립을 불가피하게 만들었다.

○김일성 사망

 7월9일 낮12시,북한 관영방송들은 특별방송을 통해 김일성이 8일 새벽2시 심근경색으로 사망했다고 발표했다. 사상 최초의 남북정상회담을 불과 17일 앞둔 시점이었다. 분단과 한국전쟁의 책임자로 49년간 한반도 반쪽을 지배하던 독재자의 부고로 한때 유화국면으로 내달리던 남북관계는 일시에 얼어 붙었고 남측 내부에서도 한때 「조문파동」과 같은 사상논쟁이 일어났다. 북한은 현재까지 김정일의 권력승계가 이루어지지 않고 내부 혼란의 조짐을 보이는등 김일성사망 후 충격을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성수대교 등 대형사고

 10월21일 아침 서울의 강남·북을 잇는 주요교량인 성수대교가 붕괴,등교길의 여고생등 32명이 목숨을 잃는 참사가 발생했다. 불과 3일 뒤 충북 충주호유람선에 불이나 관광객 29명이 숨졌고 이어 12월7일에는 서울 아현동 도시가스공급기지에서 가스가 폭발, 도심한복판을 초토화시키면서 12명의 희생자와 숱한 이재민을 냈다. 앞서 8월11일에는 경남 삼랑진에서 열차끼리 정면충돌,2백명이상의 사상자를 내는등 도처에서 대형사고가 빈발했다.

○도세 전국화

 9월초 인천 북구청 말단여직원의 지나친 사치행각으로 꼬투리가 잡힌 공무원들의 세금횡령은 불과 한달여만에 전국에 걸친 광범위한 비리로 확대됐다. 인천,부천의 3개구청,서울의 영등포·양천·강남구,부산 해운대구등 전국 50여곳에서 도세가 확인됐고 심지어 교육계까지 오염된 사실이 드러났다. 세도들이 주머니 돈 꺼내듯 착복한 혈세액수는 지금까지 밝혀진 것만 해도 1백억원대를 훨씬 상회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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