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습늘리고 실력위주 배역선정 활력 넣어/국립발레학교 만들어 체계적 교육 했으면” 김혜식 국립발레단장은 올 한 해를 유난히 바쁘게 지냈다. 그는 세계적 발레리나와 교수로서 안정된 생활을 버리고 지난해 미국에서 단신귀국해 침체된 국립발레단을 맡는 「모험」을 감행했다. 그는 새로운 국립발레단 만들기에 혼신의 노력을 기울였고, 최근 다시 임기 2년의 단장직에 유임됐다. 『시간이 어떻게 지나갔는지 모르겠어요. 훌륭한 무대를 만들기 위해 여기저기 뛰어다니다 막상 막이 오르면 그날부터 다음 공연을 위해 준비해야 하는 생활…. 만족스럽지는 않지만 최선을 다한 2년이었습니다』 그가 부임하기 전의 국립발레단은 생동감을 잃고 지친 모습이었다. 그는 평범한 방법으로 활력을 불어넣는 데 성공했다.
『처음 와서 보니 단원들이 오전에만 연습을 하더라고요. 또 남는 시간에 부업을 하는 단원이 많았어요. 그래서 연습시간을 늘리고 부업을 중단시키는 일을 먼저 했어요. 이와 함께 서열중심에서 실력위주로 배역을 뽑았습니다. 자연히 단원들의 기량이 나아지고 자신감이 붙는 표정이 역력했어요』
그는 또 국립발레단의 폐쇄성을 떨치고자 외국의 정상급 안무자와 무용수를 과감히 초청, 공연하는 기회를 늘렸다. 다양한 레퍼토리를 개발하기도 했다.
『무엇보다도 기억에 남는 것은 후원회의 발족이에요. 발레는 돈이 많이 드는 작업인데 우리의 여건은 매우 어렵습니다. 발레를 사랑하는 분들이 힘을 모아 도와주어서 큰 힘이 됐습니다』
국립발레단 후원회(회장 윤병철 하나은행장)의 결성은 우리 문화계에 신선한 충격이기도 했다. 후원회원들은 지난달 이 발레단이 초연한 「해적」에 단역으로 출연하는 추억을 간직할 수 있었다.
올해 이화녀대가 선정한 「20세기를 빛낸 10인의 여성」으로 뽑히기도 한 그는 『체계적인 발레교육을 할 수 있는 국립발레학교를 세우는 것이 앞으로의 꿈』이라고 밝혔다. 그는 요즘도 성탄절을 맞아 올린 발레 「호두까기 인형」(20∼27일)에 매달려 바쁘게 보내고 있다.
42년 서울에서 태어난 그는 이화여고 1학년 때 공연한 「백조의호수」에서 스승 임성남과 2인무를 춘 유망주였다. 이화여대를 졸업한 뒤 66년 영국으로 건너가 로얄 발레학교에서 공부했고, 스위스 취리히 발레단과 캐나다 몬트리올 발레단에서 프리마 발레리나로 활약하는 세계적인 무용수로 성장했다. 72년부터 미국 캘리포니아 주립대 프레스노대학의 연극무용과 교수로 근무하다 93년 국립발레단장겸 예술감독에 취임했다.<김철훈기자>김철훈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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