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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종석 단편 「제망매」/윤지관 문학평론가·덕성여대교수(소설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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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종석 단편 「제망매」/윤지관 문학평론가·덕성여대교수(소설평)

입력
1994.12.22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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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회적 책임과 개인의 자유 성찰 세계화가 우리의 살길이라는 말이 구호처럼 되풀이되고 우리 삶의 기본틀이 되어왔던 민족의 개념부터 수상쩍게 여기는 풍조가 커져가는 시기에, 고종석의 단편 「제망매」(「문학과사회」 겨울호)를 읽는 것은 유익하다. 죽은 누이에 대한 추모가 이 작품의 일차적인 내용이지만, 여기에는 삶의 터전으로 외국을 선택한 한 지식인의 자기성찰이 있기 때문이다. 작가는 우리 사회의 삶에 대한 폭넓은 관심과 강한 자의식을 가진 화자를 통해 민족주의와 코스모폴리터니즘이라는 묵은 주제를 새롭게 부각시킨다.

 최근 무작정 프랑스에 이주한 화자는 한국을 떠나기 전 병상에 있던 이종누이가 결국 세상을 떠났다는 소식을 듣게 된다. 화자는 깊은 감회에 잠겨 누이의 삶과 죽음에 대해 명상한다. 어린시절 누이와 나누었던 정다운 체험과 이후 나름대로 성실하게 살았던 누이의 짧은 생을 화자는 향수와 애정을 담은 어조로 전한다. 누이는 비록 알려지지 않은 평범한 삶을 살았지만, 「소리·소문없이 사랑을 실천한」 「박애의 투사」이고, 「이름을 알 수 없는 별의 영웅적인 딸」이다.

 누이 혜원의 삶에 이처럼 비극성까지 높은 의미를 부여하는 화자의 선언은 두 방향을 겨냥하고 있다. 하나는 사회적 책임감을 강조하고 개인의 삶을 억누르는 「위대한」 인간들이며, 다른 하나는 이 모든 굴레에서 벗어나 삶의 요구에 따라 살려는 일탈의 충동이다.

 누구나 운동권일 수밖에 없었던 이른바 80학번 세대로서, 혜원도 야학에 참여하는등 사회에 대한 관심과 책임감을 함께 하였다. 그러나 그에게 중요한 것은 「혁명적 열정」 같은 것이 아니라 몸에 밴 이타성과 잔정과 낙관이었다. 작가는 격랑의 시대에 높이 울리던 이념의 소리보다 작지만 사랑이 밴 실천이 더 소중하다는 메시지를 전하려 한다. 언어란 원래 폭력적일 수 있으며, 「투철한 책임감」이 오히려 커다란 악을 야기할 수도 있기 때문이다.

 결국 이 작품의 주제는 인간의 자유의 문제라고 할 수 있다. 인간이 사회의 틀 속에서 살 수밖에 없다면, 도덕적 삶이나 사회적인 실천은 자유와 어떤 관계를 가지는가? 민족이나 조국에 대한 애착은 불가피한 것인가, 아니면 삶을 제약하는 족쇄인가? 이러한 질문 앞에 화자는 관찰자로서 어떤 해답도 유보한다. 최소한의 사회의식과 개인적인 성실함으로 살았던 혜원은 말하자면 화자의 자유주의적 충동이 가까스로 찾아낸 타협이자 접점이다. 작가의 사유가 여기서 한 치도 전진하지 못하고 있는 만큼 작품 「제망매」도 이 난제를 둘러싸고 머뭇거릴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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