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할리우드와 일본기업/박명진(한국논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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할리우드와 일본기업/박명진(한국논단)

입력
1994.12.22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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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내년의 종합유선방송의 출발을 앞두고 요즘 유선방송 프로그램 공급회사나 방송사들의 개국행사가 한창이다. 미래 한국영상산업의 성패가 달린 분야라서 사회적 관심과 기대도 크지만 대부분이 문화산업의 경험이 별로 없는 기업들이 참여하고 있는 것이어서 걱정도 적지 않은 것같다. 5년전 할리우드의 유수 영화사인 컬럼비아사와 트라이스타사를 사들였던 소니사가 엄청난 적자를 기록하고 회생의 가망이 없어 철수할 것이라는 전망이 유력하다. 소니에 이어 유니버설 스튜디오가 소속된 MCA그룹을 사들였던 마쓰시타그룹의 경우도 우여곡절은 다르지만 철수의 위기에 봉착해 있다는 소식이다. 마쓰시타는 소니와는 달리 그간 유니버설과 계약관계에 있는 스필버그 작품의 연이은 히트로 상당한 이윤을 얻은 것이 사실이다. 그러나 MCA의 참모본부를 장악하고 있는 바세르만(WASSERMAN)같은 할리우드 본토박이 경영진들의 강한 저항에 부딪치고 있는 것이다. 흥행의 귀재인 이들 없이는 할리우드기업의 운영은 불가능한데 이들은 MCA의 자율적인 운영을 요구하며 그 방안으로 유니버설 주식의 51%를 그들에게 되팔 것을 요구하면서 그렇지 않으면 MCA를 떠나겠다며 버티고 있는 것이다. 이유는 일본의 보수적인 문화와 그것에 기반한 경영방식이 분기별 배당액에 연연하기보다 때로는 엄청난 손실과 모험을 감수하는 대담성과 기민한 유동성이 필요한 오락문화사업에서 커다란 장애가 된다는 것이다. 마쓰시타 역시 쉽게 굴복할 것같지는 않지만 어쨌든 부분적으로나 전체적으로 손떼는 것을 검토하기 위해 MCA의 자산평가를 은밀히 의뢰했다는 소문이다.

 소니나 마쓰시타같이 자본의 힘만으로 할리우드에 입성한 일본기업들이 할리우드의 정글에서 살아남을지 혹은 상처투성이로 손들고 나올지 좀 더 두고 볼 일이지만 몇 가지 교훈은 발견할 수 있을 것같다. 우선은 하드웨어의 생산업체들이 하드웨어의 판매촉진이 지속적인 소프트 웨어의 공급에 있다 하여 소프트웨어산업에 진출, 소위 시너지(SYNERGY)효과를 기대한 경영전략에 이상기류가 생기기 시작한 점이다. 소니의 VCR인 베타맥스의 실패 이후 소프트의 확보가 하드산업의 사활을 결정짓는다 하여 영화, 음반에 이어 특히 새로운 기술의 각축장이 되고 있는 게임산업분야같은 곳에서 시너지전략이 치열하지만 그것이 과연 타당한 것인지에 대한 의문이 제기되는 것이다. 일본기업들의 고전은 단순히 미국문화에 적응하지 못하는 일본기업의 문제라기보다도 전통적인 산업들 특히 하드 웨어산업의 경영방식에 익숙한 기업들이 전혀 다른 논리와 법칙과 노하우를 요구하는 문화산업 앞에서 갈팡질팡하고 있는 모습으로 보이기 때문이다. 자본력과 합리적인 운영방식만으로 가능했던 다국적기업의 경영전략이 문화의 흐름, 관객의 취향변화를 읽어낼 줄 아는 감각과 최고의 창조역량을 가진 인재들을 발굴·등용할 줄 아는 능력, 투기를 두려워하지 않는 모험심같은 것을 요구하는 오락산업에는 별로 통하지 않는 것임이 드러나고 있는 것이다.

 하드―소프트의 시너지전략은 금세기 초 영화산업의 발아기에 에디슨에 의해 이미 실험되었던 것이기도 하다. 기자재 발명가이며 특허권자였던 에디슨은 기자재 제조산업을 운영하면서 기자재의 판매촉진을 돕기 위해 스스로 영화제작사를 두고 영화를 제작했으며 경쟁사들을 견제하기 위해 특허권을 지불하는 회사들로 카르텔을 만들었고 카르텔 멤버가 아닌 업자들을 테러리즘의 방법까지 동원해가며 막으려 했었다. 그러나 결과는 에디슨의 실패와, 돈과 하드웨어기술은 없으나 관객을 알고 오락산업이 무엇인지를 아는 보따리흥행사들의 승리로 끝났으며 에디슨의 테러를 맞던 보따리흥행사들이 이룩한 것이 오늘의 할리우드인 것이다.

 정보문화산업, 오락산업이 21세기 산업의 총아로 부상되면서 우리나라에도 문화산업의 경험이 전혀 없거나 일천한 기업들이 방송, 유선방송, 게임등 소프트 웨어 공급·제작산업에 몰리고 있다. 일부 전자산업을 주력업체 중의 하나로 갖고 있는 기업들의 경우에는 하드웨어 판매촉진의 전략으로, 또 다른 기업들은 소프트웨어산업의 중요성 때문이다. 그러나 예측 불가능하고, 변덕스럽고, 변화무쌍한 관객의 취향(그 어느 세련된 사회조사방법으로도 확실한 예측은 불가능하다는)을 감지해내고, 사무직원이나 공원들과는 다른 생리를 가진 예술가들을 어떻게 다루면서 합리적인 운영방식과 마케팅방식을 조화시켜 성공으로 이끌 수 있을 것인가? 할리우드흥행의 귀재들조차도 겨우 4편에 한편꼴 정도의 성공률을 기록하는 투기성 강한 이 분야에서 종래의 경영방식으로 견딜 수 있을 것인가? 우리 기업들은 할리우드에서 피흘리고 있는 일본기업들로부터 많은 교훈을 얻어야 할 필요가 있을 것같다.<서울대교수·언론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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