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민들 인간상실 극치에 전율/도덕재무장 바른 가치관 절실▷반인륜사건◁
패륜범죄의 박한상을 비롯해 지존파일당, 택시승객 연쇄살인범, 법정증인가족살해범등 「인간이기를 포기한 자들」의 범죄가 발생할 때마다 국민은 인간상실의 극치에 전율했다.
박은 물질적 어려움 없이 생활하다 황금만능주의에 물들어 가치관이 전도된 청소년의 표본이었다. 살인공장까지 차려놓고 인간사냥에 나섰던 지존파는 자신들의 사회적응 실패를 가진 자를 향한 극단적인 증오로 표출했다.
이런 사건들이 가정과 학교의 인간교육 부재 때문이라는 반성에서 도덕 재무장운동이 활발히 전개되기도 했다.
사회원로등을 중심으로 「신사회 공동선 운동연합」 「효세계화 운동본부」「신한국 도덕성회복 국민운동본부」등 10여개 사회단체가 결성됐다.
봉사활동 과목을 신설하는 대학과 신입사원 선발때 사회봉사의 정도를 알아보는 기업들이 늘어났고, 명심보감등 수신서가 베스트셀러가 되기도 했다.
또 지존파 일당이 백화점 고객명단을 살인대상으로 삼으려 했다는 사실이 드러나면서 개인 신상정보 관리에 비상이 걸렸다.
온보현사건은 부녀자들의 택시기피로 승객이 격감, 택시업계가 한때 곤욕을 치렀다. 형광번호판까지 등장했으나 무적택시가 여전히 활개쳐 당국이 골머리를 앓고 있다. 초동수사과정에서 공조수사 미흡등으로 여론의 질타를 받았던 경찰은 광역수사단을 발족했다.
상문고의 내신조작비리는 빙산의 일각이었다. 교육부는 무작위로 선정한 전국 53개교에 대해 해당 시·도교육청을 통해 특별감사를 벌이는등 교육계 내부의 정화에 나섰다. 일선학교는 유료 특별보충수업 계획을 취소했으며 학부모의 찬조금 징수 금지등 자체정화 활동을 벌였다.
▷종교사건◁
폭력이 난무한 조계사 종단분규는 50년대 비구·대처승 논쟁이후 내연하던 계파간 알력이 서의현총무원장의 3선연임 시도를 계기로 표면화했다는 점에서 조계종의 「자생적 혁명」으로 평가받았다. 또 개혁파측이 승리함으로써 종단이 통합되고 조계종 내부개혁이 꾸준히 이뤄지고 있다.
조계종 사태가 불교개혁을 위한 것이었다면 탁명환 종교문제연구소장 피살사건은 일부종교가 본분을 망각한데서 비롯된 범죄였다.【김성호·권혁범기자】
◎탁명환씨 피살
2월 18일 밤 사이비종교를 파헤쳐온 국제종교문제연구소 탁명환(57)소장이 서울 노원구 월계동 삼호아파트 31동 자신의 집앞 복도에서 대성교회 운전사이자 신학대생 임홍천(26)씨가 휘두른 쇠파이프에 머리를 맞고 흉기에 찔려 숨졌다.
임씨는 『존경하는 대성교회설립자 박윤식목사를 이단이라고 비방해 살해했다』고 밝혀 종교적 맹신이 빚은 범행으로 큰 파문이 일었다. 검찰은 범행 나흘전 미국으로 건너가 현재도 체류중인 박목사가 임씨에게 「탁씨에 대한 하나님 심판」을 시사, 암묵적으로 살해를 교사했다고 결론짓고 박목사를 살인교사혐의로 입건했다.
무기징역을 선고받았던 임씨는 탁씨 가족들의 탄원으로 항소심에서 징역 15년형으로 감형됐다. 한편 종교문제연구소는 탁씨 차남이 운영하고 있다.
◎장교 무장탈영·총기난동
9월27일 새벽 경남 울산군 강동면 육군 모부대 해안 4대대 44소초장 조한섭(23·ROTC 32기)소위와 13중대 소대장 김특중(23·육사 50기)소위등 장교 2명이 하사 1명과 함께 무장탈영하는 군사상 초유의 사건이 발생했다.
또 10월31일에는 경기 양주군 육군모부대에서 사격훈련중이던 서문석(21)일병이 소총으로 직속상관인 중대장과 소대장을 쏘아 숨지게 한 뒤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
탈영 장교들은 ▲사병들이 소대장방에서 화투하기 ▲소대장에게 반말하기등 소위 「장교길들이기」가 만연돼 이를 바로잡기위해 탈영했다고 동기를 밝혔으나 「그 장교에 그 사병」이란 비난을 면치 못했다. 탈영장교에게 징역 7년, 하극상을 주도한 사병 2명은 징역 10년, 중대장 2명에게 징역 3년이 각각 선고됐다.
◎철도·지하철 파업
철도청 소속 기관사 기관조사 검수원으로 구성된 전국기관차협의회(전기협)가 ▲변형근로시간제 철폐등을 요구하며 6월23일 파업을 시작, 승객과 화물수송이 사실상 마비되는 혼란이 일어났다. 게다가 서울지하철노조와 부산지하철공단노조가 연대파업에 돌입하면서 최악의 교통대란이 일어났다. 정부는 간부 직원과 군기관사등을 동원, 긴급수송대책을 마련했으나 역부족이었다.
정부는 『전기협이 임의단체이고 지하철 파업도 불법』이라며 복귀시한을 정해 기간내에 현업에 참여치 않는 파업자를 모두 파면시킨다는 강경책으로 일관, 기관사들이 속속 복귀하면서 정상을 회복해가다 30일 서울지하철노조가 파업을 철회함으로써 7일만에 종결됐다. 그러나 국민을 볼모로 한 노조나 정부의 대응방식 모두에 비난이 쏟아졌다.
◎상문고비리
3월14일 상문고교사 8명이 상춘식(53)교장의 지시로 ▲유력인사 자제들의 내신성적을 조작하고 ▲86년부터 학교발전기금 명목으로 학급당 2백만∼5백만원씩 16억여원의 찬조금을 거뒀다고 폭로했다.
검찰수사결과 상씨는 학부모들에게서 거둔 17억여원중 15억여원과 보충수업비 6억여원등 21억여원을 개인 부동산 매입에 유용하고 90,93년에 성적조작을 지시한 사실이 밝혀져 내신성적 산정을 둘러싼 의혹과 불신을 가중시켰다.
또 당시 국립교육평가원장이던 박병용(58)씨가 서울시교위 부교육감으로 재직할 때 상교장에게서 감사와 관련해 1천5백만원의 뇌물을 받은 사실이 드러나 비리 은폐의혹과 함께 교육행정의 투명성에 치명상을 입혔다. 상문고에는 관선이사가 파견됐다.
◎상문고 교사 양심선언/「성적조작 소문」 사실확인 파문/교사들 잇단 폭로 「바로서기」계기로
소문으로만 떠돌던 「잠겨진 교육계의 비리」가 지난 3월 서울 상문고 교사들에 의해 베일을 벗었다.
이들이 양심선언을 통해 밝힌 내신 성적조작과 찬조금비리는 교육계에 걷잡을 수 없는 파문을 던졌고, 사회전반에 교육개혁의 필요성을 일깨웠다. 양심선언 교사중 유상근(유상근·44·영어담당)씨는 『교사의 바로서기가 그토록 힘들 줄 몰랐다』며 지난날을 회고했다.
그는 『교권확립의 진통을 거울삼아 교육계의 비리가 다시는 비집고 들어올 수 없도록 교사 학부모 학생 모두가 노력해야 한다』고 말했다.
양심선언교사는 처음 8명에서 55명으로 늘어났다. 이들은 최근 송년모임을 갖고 「올바른 교육」을 향한 의지를 재확인했다.
관선이사가 선임되고 새 교장이 부임하면서 교내 분위기는 일신됐다. 교사들은 부정을 강요했던 상춘식(53)전교장의 「상머슴」에서 교육자로 본연의 모습을 되찾았고 학생들의 동요도 없어졌다.
학생회가 부활됐고 학생회장을 직선으로 선출했으며 학내 동아리활동이 활발해지는등 학내 분위기는 민주화했다.
상교장 밑에서 20여년간 교편을 잡아온 김재기(43·국어담당)교사는 『양심선언은 거창한 교권확립을 위한 투쟁이었다기보다 인간이 인간다워지고 싶은 양심의 목소리였다』고 강조했다.
그동안 잔존했던 상씨측근과 양심선언교사간의 갈등과 대립도 많이 해소됐지만 양심선언 교사들은 상교장 재판은 빠짐없이 방청했다.
그들은 『어렵게 찾은 교권과 양심을 화해와 포용으로 지켜나가겠다』고 서로 다짐하고 있다. 상문고가 입은 큰 상처를 빨리 치유하는 방법은 그것 뿐이기 때문이다.【장학만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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