읽는 재미의 발견

새로워진 한국일보로그인/회원가입

  • 관심과 취향에 맞게 내맘대로 메인 뉴스 설정
  • 구독한 콘텐츠는 마이페이지에서 한번에 모아보기
  • 속보, 단독은 물론 관심기사와 활동내역까지 알림
자세히보기
이 정치개혁의 위기(사설)
알림
알림
  • 알림이 없습니다

이 정치개혁의 위기(사설)

입력
1994.12.19 00:00
0 0

 「냉전 때문에 참아야 한다」는 말은 더이상 설득력이 없었다. 길가의 카페나 고층빌딩의 사무실 어디서고 삼삼오오 짝을 지어 모이기만 하면 「이제는 달라져야 한다」는 말밖에 나오지 않았다. 부정과 비리를 일삼아온 보수 정객이 싫었고 그 얼굴이 그 얼굴인 정치판에 식상한지 오래였다. 냉전을 빌미로 반세기 동안 권력을 독점해온 기민당에 대해 무조건 물러나라는 국민적 공감대가 이루어진 것이었다. 그러나 지난 3월에 이렇게 시작한 이탈리아의 탈냉전적 선거혁명은 9개월만에 좌초할 위기를 맞고 있다.

 지난 13일에는 언론재벌 출신인 「전진 이탈리아」의 베를루스코니총리가 뇌물공여혐의로 검찰의 신문을 받았고 하루 뒤에는 연방파인 「북부동맹」의 보시당수가 내각탈퇴 의사를 비치면서 혁신 계열의 야당과 연대하여 방송심의위원회를 신설했다. 베를루스코니의 언론정책에 공과 사의 경계가 불분명하다는 세간의 의혹을 더욱 더 증폭시켜 자파의 위상을 강화하려는 전략이었다.

 이어 17일에는 혁신 계열이 북부동맹과의 연대아래 내각불신임 동의안을 의회에 상정하기에 이르렀다.

 개혁과 변화의 불확실성을 감수하면서 신생 정당을 지지하고 전면적 정계개편을 단행했던 이탈리아 국민에게 주어진 보상 치고는 너무나 잔인하다. 청렴과 수권능력을 다같이 겸비한 「신」세대 정치세력이라고 자신을 미화해온 전진 이탈리아와 북부동맹은 「구」세대 만큼이나 권모술수에는 능하고 민심에는 둔감하다.

 게다가 총리는 철학이 없다. 「전진하자」는 지난 총선에서의 약속을 구체적인 개혁 프로그램으로 승화 발전시키기에는 상상력도 모자라고 도덕성도 부족하다.

 따라서 검찰이 개혁의 주체 자리를 계속 차지하고 있는 것은 당연하다. 구체적인 프로그램이 부재할 때 국민의 시선은 미래보다 과거에 치중하게 되고 개혁은 새것을 창조하기 보다 헌것을 부수는 사정에 치우칠 수밖에 없다. 그리고 그것은 베를루스코니 정부의 붕괴를 재촉할 것이다.

 사정은 부패척결에 필수적이다. 하지만 그것이 개혁의 전부가 되어버리면 사회가 기댈 곳이 없다.

 한국은 이탈리아의 전철을 밟지 말아야 한다. 사정의 커다란 「채찍」을 휘두를 때 미래 역시 내다보면서 일할 동기를 부여할만한 비전을 제시하고 「당근」을 제공해야 한다. 아울러 사정당국이 파헤치는 거대한 부패의 구조에 충격을 받아 무기력해질 사회에 다시 자신감을 불어넣을 보다 창조적인 개혁정책이 있어야 한다.

기사 URL이 복사되었습니다.

세상을 보는 균형, 한국일보Copyright ⓒ Hankookilbo 신문 구독신청

LIVE ISSUE

기사 URL이 복사되었습니다.

댓글0

0 / 250
중복 선택 불가 안내

이미 공감 표현을 선택하신
기사입니다. 변경을 원하시면 취소
후 다시 선택해주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