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서 「반미선동」 악용할까 경계/방북의원등 가용채널 총동원 미국정부는 미군헬기의 비무장지대 불시착사건을 「단순사고」로 잠정 결론짓고 북한과의 사이에 열려있는 모든 채널을 동원, 발빠르게 조기수습을 꾀하고 있다. 미국무부는 사고직후 북한과의 1차 연락창구인 뉴욕 유엔대표부의 북한대표단을 통해 승무원의 신변보장과 조속한 송환을 요청했다.
국무부는 이와 함께 핵문제를 논의하기 위해 북한을 방문중인 빌 리처드슨의원(뉴 멕시코주·민주)을 통해 북한측과 기체및 승무원 송환교섭을 벌이고 있다.
워런 크리스토퍼국무장관은 17일 상오(현지시간) 리처드슨의원과 전화통화를 갖고 승무원들의 신변보장과 조속한 송환을 북한측에 요구할 것을 촉구했다고 국무부 관리들이 전했다. 국무부관리를 동행하고 있는 리처드슨의원은 서울시간으로 19일 상오 10시 판문점을 통해 서울에 도착할 예정이나 이번 사건으로 서울도착 시간이 늦어질 가능성도 있다고 측근들은 말했다.
미국방부 소식통들은 이 헬기가 한국시간 17일 상오 10시께 춘천의 「캠프 페이지」 기지를 떠나 40여분만인 10시45분 교신이 끊긴뒤 11시3분께 비무장지대북쪽 3마일 지점에 불시착했다고 밝혔다. 한 소식통은 비무장지대에 있는 한국군측 관측소에서 근무중이던 한국군 병사들이 군사분계선 북방지역으로 넘어가는 문제의 헬기를 목격했다고 전했다.
미국방부측은 이같은 점으로 미뤄볼 때 이 헬기가 기체고장으로 지상관제소와교신이 끊긴채 육안으로는 제대로 식별이 불가능한 군사 분계선을 넘다가 북측의 대공포화를 받고 불시착했을 가능성이 크다고 보고 있다. 윌리엄 페리국방장관도 17일 『군사분계선이 주로 산악지역에 위치하고 있기 때문에 아군기가 분계선을 넘는 것은 이례적인 일은 아니다』고 말해 이번 사고가 승무원들의 실수에 의해 일어났을 가능성을 시사했다. 이날 저녁 CNN TV방송에 출연한 제임스 울시중앙정보국장도 이번 사건에 대해 별로 아는바가 없다고 밝혔다.
미국관리들은 북한이 이번 사건을 조기에 매듭짓는데 협조해 올 것으로 조심스럽게 낙관하고 있다. 하지만 미국정부 일각에서는 이번 사건이 북한내 강경파에 의해 반미 선동에 악용될 소지도 배제할 수 없다며 우려를 표시하고 있다. 일부 관리들은 북한이 조선중앙통신 성명을 통해 이번 사건을 미국측의 「도발」로 규정한데 대해 주목하고 있다. 북한측은 미국과의 핵협상과 수교대화를 진행하는 동안에도 SR71 고공정찰기를 비롯한 미군정찰기들이 그들의 상공에 대한 「정탐행위」를 계속하고 있다고 비난해왔다.
제임스 릴리전주한미대사는 이날 북한이 이들 승무원을 「볼모」로 잡고 미국에 모종의 흥정을 요구해올 가능성도 있다고 말했다. 릴리전대사는 그러나 『북한이 현명하다면 그같은 짓은 하지 않는게 좋다』고 말했다.
사고기에 탑승했던 두 승무원의 가족들은 크리스마스를 앞두고 미국의 주요 TV방송에 나와 그들의 송환을 울면서 호소하고 있다. 이런 상황에서 북한측의 재빠른 송환협조는 미국과의 관계개선에 또하나의 촉진제가 될 수 있을 것이다.
하지만 그 반대의 경우 갓 싹트기 시작한 북·미 관계는 이번 사건으로 동사할지도 모른다. 리언 파네타백악관비서실장은 이번 사건을 「불길한 일」로 규정하고 모든 수단을 동원해 조기해결을 위해 노력하겠다고 밝혔다.
북·미관계는 아무도 예상치 못했던 미군헬기의 불시착 사건으로 또다른 시험대위에 올라가 있다.【워싱턴=이상석특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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