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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평선

입력
1994.12.16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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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9세기 말의 우리나라는 개화의 진통기였다. 쇄국의 울타리를 넘어 해외에 관심을 갖기 시작했다. 근대적인 뜻에서 국제화라고 할까. 1880년 개화파 정치인 유길준이 일본을 거쳐 미국에 가서 수학했다. 최초의 서양유학이다. 그는 4년 가까이 미국과 유럽을 돌아보고 귀국해서 「서유견문」이라는 기행기를 남겼다. ◆한편 비슷한 시기인 1881년 공식적인 해외시찰단인 신사유람단이 일본에 파견되었다. 10여명의 정식위원과 수행원이 5인 1조로 약 4개월 동안 새로운 문물을 익혔다. 중앙정부의 각종시설과 세관 조폐 그리고 산업을 시찰했다고 한다. 이들의 「유람」이 그후 어떻게 국정에 반영되고 기여했는지는 뚜렷한 후문을 찾아보기 어렵다. ◆현대의 도시국가인 싱가포르는 행정과 법질서가 엄격하며 부정부패 방지에 성공한 나라로 꼽힌다. 외국인이라도 자국법을 어기면 곤장을 칠만큼 준엄한 것으로 소문이 났다. 관료의 복지부동, 물렁한 질서의식에 젖은 우리에겐 부럽고 배울 바가 많을 것 같다. 그래서인지 공무원 해외시찰단이 이곳에 몰린다고 한다. ◆그러나 지나치면 탈이 나게 마련이다. 싱가포르정부가 손을 흔들었다. 업무에 지장을 줄 만큼 몰려 귀찮으니 그만 오라는 요청을 하기에 이르렀다. 그럴만하니까 그랬으리라는 생각이 든다. 그렇게 몰려 가서 얻어온 것이 무엇인가도 의문이 아닐 수 없다. 우리나라 행정의 무계획성·소나기성이 여기서도 드러난다. ◆비슷한 사례가 과거에도 있었다. 그것이 타성적으로 반복되고 있을 뿐이다. 신사유람단의 전철이 1세기 후에까지 계속되는 현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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