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년 한해는 유달리도 많은 사건 사고들이 있었던 한 해로 기억된다. 뒤에 터진 사고들이 워낙 큰 것들이라 앞에 일어난 사건들을 묻어버려 다행이지 만일 전부를 한꺼번에 다 기억한다면 정말로 미쳐버릴지도 모를 일이다. 많은 사람들은 그것들을 「인재」라고 하여 피할 수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터진 사건들임을 강조했다. 그러나 가만히 살펴 보면 그 사건들은 대부분 전환기에 처해 있는 우리사회의 독특한 구조적 성격을 반영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따라서 개인적 차원에서 조심하는 태도만 갖고서는 쉽게 예방될 수 있었던 것은 아닌 것으로 보인다. 지난 30여년간 우리 국민들이 옆을 돌아보지 않고 열심히 일해 온 결과 삶의 물질적 측면에서는 엄청난 변화가 이루어졌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사람들의 사고관습이나 행동양식은 별로 변치 않았고 이러한 것들의 변화를 전제로 하는 각종 제도도 변화와는 담을 쌓은 듯이 보인다. 이러한 절름발이식 사회변화가 결과한 문제점과 고통은 아마도 교통의 문제를 예로 들 때 손쉽게 이해될 수 있을 것이다.
자동차의 수는 엄청나게 늘었는데도 도로의 증가속도는 이에 비하면 거북이 걸음에 진배 없었으며 운전자들의 행동양식은 여전히 보행자의 수준을 넘지 못하고 있다. 이러한 상태에서 교통대란은 필연적인 일일 수밖에 없었고 또한 한번 사고가 나면 대형이 되지 않을 수 없는 것이다. 현대적 교통수단이 삶의 편익과 함께 불편을 증가시키고 문명의 이기와 함께 흉기로 될 수밖에 없는 것은 너무나 당연한 일이 아닐 수 없다. 그런데 이 교통의 문제가 그 자체로 그치지 않고 우리사회의 모든 부문에서 겪고 있는 어려움을 대단히 명료하게 설명해 주는 상징물로 되고 있는데 문제의 심각성이 있다. 교육, 환경, 이익집단간의 갈등, 미숙한 대외교섭능력, 부정부패, 건설사고, 대형범죄등 쉽게 손에 짚이는 문제치고 그러한 관점에서 해명되지 않는 것이 없다.
이러한 문제들은 물량적 발전, 의식·태도및 제도사이의 상호 괴리된 변화에서 결과하는데 이러한 문제들이 관련 당사자 자신들의 반성과 합의를 통해 해결될 가능성은 현대의 대중사회 속에서는 사실상 불가능하게 보인다. 그래서 우리는 교통경찰 역할을 필요로 하는 것이다. 이러한 역할을 맡은 사회의 부분이 바로 정치와 행정이다.
정치와 행정이 이러한 일을 할 수 있는 것은 사적 이해관계의 당사자가 아니어야 한다는 점을 필수조건으로 한다. 사실 과거 30여년간에 이루어진 물량적 변화과정에서 우리의 행정기구는 많은 비난에도 불구하고 상당히 중요한 기여를 하였다. 바로 그러한 성취를 바탕으로 관료조직은 권위주의정치의 비호아래 스스로 사적 이익을 추구하는 기득권세력으로 변질하였고 이 점 때문에 현재의 행정조직이 과연 공평무사한 교통경찰의 역을 할 수 있는지에 대해 많은 사람들이 의심하고 있다.
관료조직의 근본적 변혁 없이 사회의 어떤 개혁노력도 성공할 수 없다는 인식이 바로 최근에 시도된 대규모 행정조직 개편작업의 기본 동인이 되고 있다. 사적 이익집단으로서 관료조직의 힘이 다른 어떤 집단보다도 강력하기 때문에 이 조직을 뒤흔드는 일은 강력한 정치력의 뒷받침 없이는 전혀 불가능한 것으로 보인다. 따라서 대부분의 국민들은 정치권이 합심하여 이 작업을 성공적으로 추진시켜 나가기를 바라고 있다. 그 작업의 이름이 개혁, 국제화, 경쟁력 제고 또는 세계화등 어떤 것이라도 상관없다.
그런데 여당은 웬일인지 무기력하고 야당은 지극히 사적인 동기 때문에 이러한 근본적 변화를 인질로 삼고 있음으로써 전체로서의 정치권은 많은 사람들을 안타깝게 만들고 있다. 사회의 질적 발전을 가로막는 각종 병목현상을 제거할 것으로 기대되는 정치권 스스로 더 크고 결정적인 병목이 되고 있는 것이다. 정치도 기본적으로는 사람이 하는 것이고 느리게 변하는 것이 사람의 사고관습이니 만큼 정치가 다른 영역에서의 변화를 따라가지 못한다고 해서 이상스럽게 여길 일은 아니다. 그러나 사회의 잘못을 고쳐야 할 정치가 사회보다 더 느리고 추한 모습을 보인다면 우리 사회는 교통대란에 비유될 큰 난리를 또 다시 겪지 않으리라는 보장이 없다. 과연 우리사회가 그러한 난리를 다시 겪어도 될 만큼 여유로운가 다시 한번 곰곰 생각해 보기를 여야정치인들에게 촉구한다. 아무래도 우리의 정치는 세계화의 사각지대인가 보다.<서울대교수`·국제정치학>서울대교수`·국제정치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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